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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청소년·불법낙태 손가락질 하기 전에 … [황세희 박사의 '몸&맘']

황세희 박사
황세희 박사 

[LA중앙일보] 발행 2020/02/12 미주판 30면 기사입력 2020/02/11 19:20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던 시절의 사연이다.

하루는 두 돌을 갓 넘긴 사내 아이가 의식불명으로 응급실로 실려왔다. 뇌 촬영상 뇌를 둘러싼 막에 피가 고인 '경막하 출혈'이 발견됐다. 보호자는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머리를 부딪쳤다"고 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두 살 배기가 스스로 넘어져 경막하 출혈이 생기긴 힘들다. 분명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보호자가 잠깐 화장실 간 틈을 타 아이의 옷을 들춰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의 몸 여기저기에 멍든 자국이 보인다. 뇌출혈 원인은 아버지의 잔인한 구타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는 입원 치료로 보름 후 의식을 회복했다.

까까머리에 눈이 유난히도 크고 맑았던 진이는 남편의 구타를 피해 가출을 반복했던 어머니에게선 방치됐고, 어머니 가출 땐 아버지의 구타 대상이 됐다.

진이가 건강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가도 또다시 학대는 반복될 것이다. 재발을 막기 위해선 부모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치료가 필요했다. 곧바로 정신과 의사의 부모 상담이 이루어졌다. 부모 모두 정신 기능은 정상이었다. 그러나 심하게 무책임하고 소심한 아버지, 무기력한 어머니가 부모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에게 진이의 존재는 그저 인생의 귀찮은 장애물일 뿐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진이 부모에 대해 '장기간에 걸쳐 부모 역할을 배우기 위한 전문가 치료가 필요한 상태'란 의견서를 남겼다.

물론 그들은 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지속적인 상담 치료를 받을 여유도, 의지도 없었다. 결국 진이는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북유럽 국가로 입양됨으로써 부모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얼핏 언론을 통해 '대한민국도 고아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선 해외 입양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접하면서 '과연 저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진이 같은 아이를 입양할 의지가 있는 걸까?' 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분명한 사실은 진이가 죽음의 문턱에 갈 때까지 국가가 진이를 위해 해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산부인과 의사가 동료 의사의 불법 낙태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사회 각계 각층에서 낙태에 대한 찬반 토론을 벌이고 있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도 생명이 있기에 소중한 마당에 하물며 인간으로 탄생할 태아를 제거하는 일에 선뜻 찬성할 파렴치한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불법 낙태에 대한 감시가 강화된 이후 '열여섯 살 딸이 남자 친구와 어울리다 임신을 했는데 학교 그만두게 한 뒤 미혼모로 만들어야 하나?' '애 키울 상황이 못 돼 빚 내서 해외 원정 낙태하려 한다. 혹시라도 낙태해 주는 병원 알려주면 은혜 잊지 않겠다'는 식의 안타까운 사연이 쏟아지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그동안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얼마나 책임 있게 감싸 안았던 것일까. 학대받은 아이가 비행을 저질렀을 때 그 지경까지 아이를 방치한 우리 모두에 대한 반성보다는 "한심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저런 행동이나 한다"며 비난의 목소리만 높였던 건 아닐까.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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