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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스무살 선거 자원봉사자의 ‘정치’

그는 스무살이라서 부끄러워했다. 3일 LA한인타운 투표소에서 만난 백인 대학생이다. 이름은 잭이라고 했다. 한인 후보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단다.

앳된 얼굴의 그는 이번이 첫 대통령 선거 참여라고 했다. 이것저것 물었다. 어린 철학이 듣고 싶었고, 어른의 철학도 훈계하고 싶었다. 투표란 이런 거라는.

질문마다 그는 아직 잘 모른다고 수줍어했다. 쭈뼛쭈뼛 말을 이어가던 그가 안쓰러워 그만 놓아줬다.

10분 뒤, 투표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잭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건 채 그를 잠시 지켜봤다. 가만 보니 그는 아까 만난 숫기없는 스무 살이 아니었다.



투표소는 한가했는데 그는 바빴다. OOO 후보를 지지한다는 푯말 앞에 혼자 서 있던 그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누군가 투표장 앞을 지나갈 때마다 수줍음이라곤 없었다.

“투표하러 오셨나요?”, “오늘 꼭 투표하세요.”

불과 10분새 수십명에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직 오전시간인데도 ‘OOO 후보를 지지합니다’ 문구가 적힌 그의 티셔츠는 군데군데 땀으로 젖었다.

시동을 끄고 다시 다가갔다. 신념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고 말이었다. 스무살 어린 철학을 반드시 들어야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첫 문답부터 허를 찌른다.

-상대후보의 단점은 뭔가.

“전 상대후보 개인을 비난하고 싶지 않아요. 대신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은 점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이것 봐라?’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기분은 좋다. 서로 원색적인 비난만 했던 이번 대선 TV토론에서 듣지 못한 지극히 상식적인 선거 캠페인이래서다. 문답은 계속된다.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이 무엇인데.

“LA 토박이라서 LA를 가장 잘 알고요.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힘없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입장을 잘 압니다. 무엇보다 제가 그분 덕에 큰 도움을 받았어요.”

-무슨 도움을 받았나.

“그의 지역구에 살았던 덕에 미국 국무부에서 지원하는 한국어 무료수업의 기회를 얻었죠. 한국에 6개월간 가서 체류하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과 미국을 잇는 정치인이 되고 싶은 꿈을 꾸게 됐어요.”

그말을 하고는 한국어를 하기 시작했다. 한인타운 투표소에서 만난 백인 청년 자원봉사자가 말이다. 갈수록 놀라운 스무살이다. 투표소의 자원봉사자 25명 중 한인은 2명밖에 없다. 그중 한 명은 2세라 한국어가 다소 서툴다. 그와 우리말로 인터뷰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대통령이 되길 바라나.

“누군지는 말할 수 없죠.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라는지는 말할 수 있어요. 정치인은 시민을 섬기는 사람이어야 해요. 스스로 왕이 되려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내 동네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더 안전하게 해줘야 하죠. 더 많은 사람들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 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길 바라요.”

-그래도 지지하는 후보를 말해줄 수 있나.

“음…. 4년 전 대선이 끝나고 실망스럽고 무서워서 친구들과 엉엉 울었어요. 새 대통령이 제 불체자 친구들을 추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결심했죠. 4년 뒤 선거에 꼭 투표하겠다고요.”

-어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제 바로 옆에 상대후보 지지 텐트가 있어요. 서로 지지하는 후보는 다르지만 자원봉사자들끼리 서로 존중합니다. 룰을 따르죠. 그런데 투표소에 온 어른들은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후보가 다르다고 서로 욕해요. 또 룰도 지키지 않죠. 누가 당선되는지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내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자부심 아닐까요.”

2020년 두 동강난 미국, LA한인타운 투표소 앞에서 만난 스무살 어린 신념은 어리지 않았다. 어른이라서 부끄러웠다.


정구현 선임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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