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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국만 위대하게 만들어준 트럼프

수전 라이스/전 유엔주재 미국대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아시아 순방은 미국의 안보와 국익을 다질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순방 이후의 지금, 미국은 더욱 고립됐다. 새로이 급부상한 '인도-태평양' 지역을 은쟁반 위에 곱게 담아 중국에 바치고 말았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일본과 한국에서 트럼프는 정돈된 발언으로 동맹국들을 안심시켰다. 무역 재협상의 호전적 압박은 접어 두는 대신 미제 무기의 구매를 늘려 달라고 요구했다. 북한과 대화를 향한 문도 열었다.

그러나 트럼프 외교는 중국에 가서 삐걱대기 시작했다. 중국은 실속 대신 거창한 환대로 트럼프의 자만심을 충족시킨 뒤 그를 마음대로 연주했다. 베이징을 찾는 국빈들에게 중국은 정책적 합의보다 화려한 의식을 선보이길 좋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과 잘 맞았다. 북핵 반대라는 종전 입장을 '영혼 없이' 반복한 중국 측 발언에 트럼프는 기꺼이 흡족해했다. 새로운 양보나 약속을 받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중국의 2500억 달러 투자 발표에 만족했을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 구속력 없는 얘기일뿐더러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말대로 "아주 작은 규모"였다.

트럼프는 시진핑에게 듣기 민망한 칭찬을 남발했다. "시 주석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며 놀라울 정도로 따뜻한 감정을 지녔다"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엄청난 무역적자를 중국 대신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의 탓으로 돌렸다. 시진핑이 권위주의 정권의 공고화에 나선 것을 찬양했다. 미 대통령이 중국 주석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은 역내에서 영향력을 키워 가는 중국에 맞서 미국이 균형을 맞춰 주길 바란 아시아 동맹국들에 오한을 느끼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어떤 우려도 표명하지 않았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양국 간에 실질적 논의가 오갔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베이징을 찾기 전에 좀 더 치열한 사전 외교를 펼쳤다면 본질 대신 보여주기에 집중하는 중국식 접근을 피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번에 그런 노력을 기울였는지 불분명하다.

오바마 행정부 때는 달랐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이징에 백악관 안보 보좌진을 보내 물밑 작업을 폈다. 2014년에는 군사적 신뢰 구축 조치와 함께 에볼라 퇴치 협력 및 비자 유효기간 연장에 합의했다. 기후변화에도 합의해 파리 협정을 끌어냈다. 이듬해에는 중국 기업의 미국 지식재산권 도용을 단속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해에도 중국은 미국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합성 약물 펜타닐(중국이 미국에 대한 1위 수출국)의 유통을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오바마에게 약속했다. 유엔 평화유지활동과 핵 안보 강화도 다짐했다.

트럼프의 외교 참사가 가장 심각했던 나라는 마지막 방문국인 베트남과 필리핀이었다. 트럼프는 무역 이슈에 대해 국수주의적인 독설을 쏟아냈다. 분노로 가득한 인상을 만방에 보인 탓에 미국은 더욱 고립됐다. 결국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11개국 정상은 미국을 빼고 협정의 틀을 다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무역협정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반면 트럼프의 적대적 연설에 뒤이어 시진핑은 시장 개방과 세계화의 혜택을 거론하며 중국을 부각했다. 오바마의 연설을 베낀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아시아 순방 때 북한에 자제력을 과시한 트럼프는 워싱턴에 귀환한 뒤 김정은에 대해 다시 과격한 트윗을 올리며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로 인해 서울에서 나온 그의 진중한 발언도 의미가 퇴색됐다. 또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이웃 나라들 간 분쟁을 중재하겠다는 오만한 제안과 인권 문제 외면, 지난해 미 대선 개입 의혹이 큰 푸틴의 거짓말을 옹호하는 발언, 미 정보기관 활동에 대한 모욕 등 트럼프의 어리석은 언행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되살리려는 미국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과 트럼프의 포옹은 미국의 리더십을 퇴색시킨 최악의 장면이었다. 어찌 보면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트럼프의 여정에서 의도하지 않았으나 완벽한 마무리가 됐는지 모른다.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13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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