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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박박'한 시대의 현명함

# 2012년 7월 2일 '역사적 실험'이 있었다. 실험을 주도한 사람은 움베르토 에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다. 80세의 에코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장서각 2층에 섰다. 양손에 각각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전자책용 기기 '킨들'을 쥐고 있었다. 갑자기 확 집어던졌다.

# 얇을수록 세련된 세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기기는 갈 데까지 갈 정도로 얄팍해야 첨단이다. 그 좁은 공간 안에 들어가는 삶의 콘텐트는 박(薄)하고 박(博)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이 나왔는지, 인터넷이 나와 '박박' 세상이 됐는지는 모르겠다. "인터넷이 사람의 뇌마저 얄팍하게 만든다"고 니콜라스 카는 비판한다. 뇌 신경회로까지 바꿔 인간을 산만하게 만든다고까지 했다. 그는 미래학자이자 인터넷 전도사였던 사람이다.

# 스타카토 읽기 세상이다. 슬쩍 훑어보는 방식.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지 않고, 이리저리 건너뛰면서 관심 있는 정보만 훑는다. 모니터상에서 무언가를 읽는 성인도 마찬가지다. 시선은 방사선으로 건너뛰며 자잘한 가십성과 선정적 기사만 눈에 띈다.

이 시대에 '전쟁과 평화' '죄와 벌'을 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두꺼운 클래식을 읽는, 읽은 자는 극소수다. 마치 불과 백 년 전 대다수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일 때 귀족들만 글을 읽을 때와 같다. 인터넷 시대의 아이러니.



# 아마존닷컴의 CEO 제프 베조스가 2억5000만 달러에 워싱턴포스트(WP)를 샀다. 베조스는 '이상한 놈'이다. 그 옛날 마징가 Z의 머리 위에 올라탔던 철수와 같이 커다란 로봇 머리 위에서 조종하고 있는 모습이 최근 사진이다. 지구를 도는 우주 호텔을 짓겠다고도 한다. 한 주가 1000달러에 육박하고 있는 초대형 온라인 쇼핑몰 주인이 휘청거리는 신문사를 왜 샀을까.

흔하디 흔한 모나미(Mon Ami) 볼펜이 2013년 생산 50년을 기념해 한정판을 내놓았다. 값을 일반 볼펜 200원의 100배, 2만 원으로 매겼는데도 하루 만에 매진됐다. 베조스는 디지털 시대의 소품종 고급화 전략을 간파한 것인가.

# 이제는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사진을 찍어대도 막상 그 영상은 스마트폰 안에 잠잔다. 요리가 나오자마자 부산을 떨며 찍느냐고 정작 그 맛의 기억은 가물하다. 인맥을 쌓는다고 무수히 많은 명함을 찍어대고 전화번호를 챙겨도 막상 그 인적사항을 쥐고 있는 주인은 스마트폰이다. 우린 컴퓨터에 '상시 접속' 상태를 유지한 채 그때그때 꺼내 쓰느라 디지털에 얽매일 뿐이다.

# 크리스토프 코흐는 2010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40일 동안 끊고 살아봤다. 불안과 조바심에 시달리다 우울증과 화병도 앓았다. 휴대폰이 없는데도 허벅지 부분이 부르르 떨리는 '유령 진동'도 느꼈다. 그는 40일 실험을 견뎌낸 뒤 "안정과 집중, 드디어 시간을 찾았다"며 체험기를 책 '아날로그로 살아보기'로 남겼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주일 간 해보다 포기했다. "후~"

# 1944년 7월 생텍쥐페리는 편지를 썼다. "전 엄마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작고 늙으신 사랑하는 나의 엄마, 제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엄마를 안아드리는 것처럼 저를 안아주세요."

이 '어린 왕자'는 정찰기를 몰고 지중해로 날아오른 뒤 돌아오지 못했다. 편지는 1년 뒤 엄마에게 전해졌다. 생텍쥐페리가 이메일이나 텍스트 메신저로 썼다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가.

# 2층에서 집어던진 전자책 '킨들'은 박살났다. 에코는 "가위와 바퀴는 어떤 소재로 만들더라도 자르고 구르는 형태를 띤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이책의 죽음이라는 말은 지겨운 유언비어다"라고 일갈했다.

떨어진 책, '장미의 이름'은 조금 구겨졌다.


김석하 사회부장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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