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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세요" 일가족 살해 생존자 김빛나

한인가정상담소 만찬연설

19일 할리우드 태글란 콤플렉스에서 열린 '35회 한인가정상담소 연례 기금모금 만찬회'에서 일가족 살해-자살 사건 생존자 김빛나(사진)씨가 기조 연설을 했다.

그녀는 2006년 생활고를 겪으며 우울증을 앓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동생(8) 빛나씨(당시 16세)를 총격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다.

그후 그녀는 총상 후유증으로 오른쪽 안면 근육 마비 등 장애가 생겼다. 이날 검은색 정장에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수수하게 등장한 빛나씨는 참석자 500명 앞에서 이후의 일기를 담담히 털어놓았다. 끝에는 눈물을 흘렸다. 연설 내용을 축약해 소개한다.

저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살아남았지만 이미 그날 저는 사랑하던 사람들과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견딜 수 있었니?"라고 물었지만 항상 저의 대답은 "저 역시 모르겠어요" 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가끔 그날 제가 죽어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취지향적인 한인 1세 우리 아빠는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빠가 동반자살을 했다는 것을 두 형사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빚이 아빠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추정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았던 걸까요.

4년간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을 다닐 때 거의 모든 학생과 심지어 교수들까지 나를 외계인처럼 쳐다봤습니다. 어떤 학생은 제가 걷는 장면을 흉내 내며 면전에서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저는 학교 안과 밖의 정신치료 전문가를 찾았습니다. 제 삶을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받았습니다.

(뉴욕에서 공부할 때) 2주 동안 노숙자로도 지냈습니다. 어렵게 찾은 집마저 렌트비가 바닥이 났습니다. 저는 카니(한인가정상담소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카니는 결코 제게 질문을 하거나 저를 판단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카니는 로터리클럽 한미은행과 함께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아주 큰 군대와 같은 한국 가족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저의 상실감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를 지지하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인생 매 순간마다 극복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미래에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직면할 때 한인가정상담소와 그 직원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여전히 갈 길이 멉니다. 제가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괜찮을 것입니다.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고 그 어떤 힘든 일도 저를 쓰러뜨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황상호 기자 hwang.sa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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