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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안과 다녀온 뒤 별별 생각

최숙희 / 수필가

충혈된 눈이 쉽게 낫지 않아 안과에 갔다. 눈의 이상을 알고 바로 병원에 간 것은 아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기도 귀찮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싶어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룬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안약인 바이진을 넣으며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다렸다. 눈에 탈이 나기 바로 직전 아이라인 문신을 시술받았고 매일 수영을 다녀 눈을 너무 혹사시켰다며 합당한 이유를 대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눈에 관해 만병통치약으로 알던 바이진도 소용없었다.

의사가 시키는 대로 턱을 받침대에 대고 렌즈 안을 들여다 보았다. 자동으로 시력이 측정되는 기계란다. 라스베이거스 가는 길처럼 나무 한 그루 없는 끝없이 황량한 길이 보이고 한 가운데 빨간 열기구풍선이 떠있다. 눈의 이상으로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 라스베이거스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말이 서투른 의사는 알 수 없는 원인이 눈을 '공격'해서 염증이 생겼는데 이런 일이 다시 생기면 정밀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얕은 의학상식에도 '공격'이라는 말에 자가면역 질환을 얘기하나 싶어 겁이 났다.

처방받은 안약을 넣고 눈의 충혈은 금세 정상이 되었으나, 50세가 넘으면 정기검진에 안과를 포함시켜야 한다기에 다시 안과에 갔다. 10년 전 라식수술 받은 이후 안과에 처음 왔기에 시신경 사진을 찍고 시야 검사도 했다. 시력, 안압, 시야는 정상이나 시신경이 보통사람보다 약해서 녹내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니 안압을 낮춰야 한단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높은 안압이 시신경을 누르면 시신경 손상이 오고 시야가 좁아지면서 실명될 수도 있다고 한다. 현대 의학으로 손상된 시신경을 복원시킬 방법이 아직 없다는 무시무시한 설명이다. 처음엔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나 하고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났다. 자각 증상이 없기에 조기발견이 힘들다는데 충혈로 병원에 가서 미리 관리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하나.

몇 년 전 투자용 부동산을 보러 다니며 만난 4유닛 주택의 집 주인이 생각난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 집에서 사는 조건으로 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는 당뇨 합병증으로 실명한 후 십 수 년을 그 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머리로 기억한 집에서 어둠에 갇혀 혼자 생활하는 기분은 어떨까. 배를 배경으로한 사진이 많은 걸로 보아 마도로스였나 짐작했다. 낚시가 취미였는지 물고기 박제도 여럿 걸려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이구나, 이 많은 사진과 물고기 박제품들이 눈이 안 보이는 지금 무슨 소용일까 했었는데. 내가 녹내장이 진행되 눈이 안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던진다면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If life hands you a lemon, make a lemonade with it) 했던가. 시큼한 레몬이 인생을 망가뜨리게 내버려두는 대신 시원하고 달콤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겠지. 반갑지 않은 상황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라는 말이다.

남편이 스트레스 주면 할 말이 생겼다. "스트레스가 안압 올린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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