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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망경] 달콤한 굴복

서량 / 시인·정신과 전문의

엄마와 아이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동발육의 어느 시점에서 아이는 자주성을 꾀하기 위하여 반동적(reactionary)으로 행동한다. 이 시기를 영어권에서는 'the terrible twos'라 하고 우리는 우리 식으로 '미운 세 살'이라 부른다.

세 살짜리들은 넘치는 생명의 욕구 때문에 엄마에게 대든다. 어느덧 엄마의 애정 어린 보호심리는 지배자의 압박으로 탈바꿈하고 모성애는 머리를 풀어헤친 마녀로 변신한다.

엊그제 나는 보았다, 동네 슈퍼마켓 계산대에 줄을 선 엄마와 아이의 갈등을. 계산대 옆에 진열된 초콜릿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의 욕망과 자식에게 충동심 억제를 교육시키려는 책무에 시달리는 엄마 사이에 일어나는 투쟁을. 나는 또 보았다. 초콜릿을 거부당한 아이가 마켓 바닥에 누워 발버둥을 치면서 죽어라 울어대는 장면을. 그리고 나는 목격한다. 보수적인 지배세력이 진보적 쟁취 성향에 의하여 무참하게 패배 당하는 현장을.

세 살 때의 번민이 고질병이 되면 젊어서 '운동권'에 뛰어들거나 나중에 반정부 세력에 합세하는 경우가 많다고 아동심리학은 가르친다. 그런 반골(反骨) 기질의 정치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사태가 일어날까. 그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정부에 습관상 또다시 반항할 것인가.



뼈아픈 성숙의 폭풍이 지나간 후 마녀나 정부를 상대로 하는 싸움보다 자신의 충동심을 자제하는 능력을 얻는 성취감이 더 월등한 삶이라는 절체절명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우리들이기를 바란다.

현대적 정신분석에서 힘(power)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아이와 엄마가 일시적으로 시사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투쟁 유형이다. 투쟁 상대는 보호자 또는 보호체제다. 투쟁은 대상(object)를 필요로 하고 그 대상은 어느새 적(enemy)으로 변한다. 부모도, 친구도, 당원(黨員)도, 동맹관계도 세상의 모든 대상은 다 적이 된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적으로 둔갑하는 수가 있다.

두 번째로는 끊임 없는 자기수련(self training)이 산출하는 창조력의 힘을 손꼽는다. 권력이라는 무거운 한자어보다 힘이라는 싱싱한 우리말이 더 어울리는 경우다. 상술이나 정치성을 띠지 않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몰두하는 모든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학문과 예술이 없는 삶은 개돼지의 삶이나 다름없다.

세 번째 힘의 종류는 사랑의 힘이다. 사랑은 상대를 위한 자연발생적 힘의 균형이다. 지배(domination)와 굴복(submission)은 서로의 체위를 바꾸기도 하고 한 쪽으로 치우친 채 유지되어도 얼마든지 좋다. 강력한 지배와 달콤한 굴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니. 남녀간 사랑은 늘 역동적(dynamic)이다.

네 번째 유형이 정치적 권력이다. 정말이지 힘이라기보다는 권력이요, 권세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일어났던 갈등과 계급투쟁이 최대로 광범위하고 복잡다단하게 확대된 인간의 집단현상으로서 정신분석이 개입하기를 꺼리는 항목이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의 쟁점은 발육과정의 시련이라기보다는 온갖 미사여구로 무장된 이념(ideology)을 내세운 전쟁이면서 권력의 이해상관까지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듯 이념적 굴복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power'에 해당하는 고대불어는 원래 '능력'이라는 창조성 있는 뜻이었다. 이윽고 18세기에 국가간의 권력이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 서구적 의식의 변천사를 여실히 증명한다.

인터넷에서 미운 세 살짜리들을 본다. 초콜릿에 대한 애착심은 일시적 현상이지만 애써 기존 이념을 쌓이고 쌓인 적(敵)으로 바꾸어 놓은 다음 사사건건 누적된 적개심을 표출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늙은 세 살짜리들이 가엽고 괘씸하다. http://blog.daum.net/stickp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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