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잔소리 참 소리
이용해 / 수필가
허생은 아내의 잔소리에 못 견뎌 집을 나와 장사를 해 돈을 남겨 아내에게 주고는 다시 딸까닥 나막신 소리를 내며 집에 들어가 책을 보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남자들이 제일 많이 듣는 것이 어머니와 아내의 잔소리이고 다음이 직장 상사의 잔소리일 것 입니다. 여자들의 잔소리는 어머니의 잔소리이고 결혼을 하면 시어머니의 잔소리입니다. 직장을 가진 사람은 직장상사의 잔소리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잔소리입니다.
그런데 남편의 잔소리를 호소하는 부인은 별로 없습니다. 황 신부님 말씀대로 여자는 하루에 2만5000단어를 구사해야 하고 남자들은 1만 단어 정도 구사한다고 하니 집에서 말을 할 때 남자가 한마디를 하면 두 마디도 더 한다는 남자들의 호소가 사실일 것 같습니다.
나는 결혼하고 별로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오고 하루 종일 환자들과 말을 하다 집에 오면 경상도 남자들 모양 세마디도 하지 않을때가 많았습니다. "아들은" "밥 묵자" "자자"의 세마디도 하기 귀찮았습니다.
은퇴를 하자마자 한국으로 나가 10여년을 혼자 살았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싶어도 장거리 전화로 할 수 있는 말이 몇 마디나 되겠습니까. 그래도 여자의 습성이라 전화에 대고 잔소리를 하면 전화기를 옆에 대놓고 딴 짓을 하곤 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아내는 눈치를 챘던지 "전화 안 받고 무얼하고 있어요"하고 시비를 걸곤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그래요, 응 응"하고 대꾸를 해주어야지 가만히 있으면 잔소리의 톤이 높아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보 잔소리 좀 그만해요"라고 하면 아내는 어디서 배웠던지 "이게 잔소리가 아니고 참 소리예요"하고 도리어 공격을 해옵니다. 그래도 장거리 전화에 한 5분이나 10분간의 잔소리는 그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은퇴를 하고 집에 와서 살면서 정말 잔소리의 공해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집에 오니 오냐 잘 되었구나 이제 잔소리를 들을 상대가 생겼구나 하고 퍼부어 대는 아내의 잔소리에 신경과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건 잔소리가 존경하는 남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게 하는 잔소리의 수준입니다. 이러다간 나도 소크라테스나 톨스토이처럼 가출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딸에게 "엄마하고 나하고 하는 대화 속에 내가 한 마디 하면 엄마가 아홉 마디 말을 하지?"하고 물었더니 딸의 이야기가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아빠가 두 마디 하면 엄마가 여덟 마디는 하지" 해서 웃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황 신부님 말 대로 나는 하루에 1만 마디하고 아내는 2만5000마디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 집은 정상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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