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교차로] 억수로 기분 좋은 날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억수는 무지막지 쏟아지는 비다. 물동이로 물을 퍼붓듯 세차게 내리는 비다. 억수로는 '억수'에 조사 '로'를 붙인 경상도 방언이다. 우리말에는 가랑비.궂은비.단비.모종비.실비.여우비.작달비.찬비.장마비 등 비에 대한 단어가 많다.
칭찬이 야박한 이 시대에 남 칭찬 듣는 것 만큼 마음 적시는 일이 있으랴. 담당 의사로 부터 '건강 이상 없다'는 판정과 창찬 듣고 공중을 나르듯 기뻤다. 그동안 얼마나 쫄았으면 사형선고에서 풀려난 죄수처럼 '살아있음'의 자유를 만끽했을까. 그동안 나는 내 몸을 혹사하며 무식하고 교만하게 건강을 자신하며 부지런떨고 닥치는대로 먹어댔다. 그 결과로 두 달전에 과로.수면부족.스트레스로 콜레스테롤과 혈압이 천정부지로 솟아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담당 의사로부터 과로금지.음식조절.체중감소.숙면 등의 주의사항을 받았는데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으니 두 달 동안 기록을 보고 대처 하자고 했다. 비상시국에는 이유나 반항 없이 명령대로 충실히 따르는게 현명하다.
그 때 부터 '이기희 몸살리기' 비상대책 위원회를 수립, 의사가 준 대시(DASH) 다이어트 플랜을 준수하며 시시각각 혈압을 재서 도표를 작성했다. 육류와 지방 섭취를 줄이고 몸에 좋은 과일 채소와 등 푸른 생선, 견과류 등 몸에 좋은 음식 많이 먹고 가벼운 운동하며 휴식하고 잠을 많이 잤다. 결과는 기막히다. 먹을 것 다 찾아먹고, 체중 12파운드 감량하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예전대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의사 명령 잘 지키는 '착한 환자'라는 칭찬 듣기도 과분한데 '귀여운 할망구'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아니 좋을손가. 사형선고 벗어난 쨍하고 해 뜨는 이 기분! 사실 혈압이 높으면 언제 시형선고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건강은 상식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밥 먹자' 대신 '식사 하자'로 언어를 바꾸면 밥을 안 먹어도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남은 음식 아깝다고 먹지 않는게 중요 관건. 내 배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몸에 청량개스를 제공하는 중요기관 이다. 누가 꼬드겨도 6시 이후에는 절대 먹지 않는다는 결심 실행. 삼시세끼 황제처럼 챙겨먹고 배고프면 참지말고 작은 과일이나 견과류로 허기를 면할 것.
건강은 상식이다. 발상의 전환.역발상이 건강한 밥상을 만든다. 몸이 망가지면 정신도 허물어 진다. 15파운드 감량하면 지난 겨울 부터 15파운드 짜리 갈비 한 박스를 하루 24시간 들고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맥주 한 박스는 못 들어도 한 박스는 거뜬히 마신다는 선배 생각이 난다. 약간 날씬해진 허리 곧게 세우고 하루에도 20장 이상 날아오는 손녀 사진 보며 혼자 히죽히죽 웃는다. 모니터 앞에서 우서방이 입 헤벌리고 억수로 좋아할 때는 손녀 사진 감상할 때다.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