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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칼럼] 허가된 정치 브로커, 로비스트

야외에서 파티를 위해 고기를 굽다 보면 파리가 많이 꼬인다. 평소에 보이지 않던 파리가 어디에선가 순식간에 나타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파리는 흔히 뭔가 썩은 곳에 꼬이는 것이 상식인데 부패하지 않은 신선한 고기를 굽는데도 파리들이 사정없이 몰려든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인간 사회의 정치 권력도 굽는 고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패한 권력이든 건전한 권력이든 가리지 않고 정치 브로커들이 설친다. 미국에서는 정치 브로커를 로비스트(Lobbyist)라고 부르고, 이들의 활동(Lobbying)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미국에서는 현재 로비 행위가 합법적 활동이다. 이렇게 로비 활동이 합법적으로 자리를 잡기까지 미국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있다. 로비스트라는 말이 생기게 된 유래에 관해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미국판 유래설은 그랜트 대통령 시절에 생겼다고 알려져 있다. 이 설에 의하면, 그랜트 대통령은 담배 피우기를 무척 좋아했는데, 부인이 담배 냄새를 질색할 정도로 싫어해서 대통령은 저녁이면 백악관 바로 옆에 있는 윌라드 호텔(Willard Hotel)에 자주 머무르며 담배와 술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자 저녁때만 되면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이 호텔로 모여 북적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료들과 정치인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많은 사람이 호텔 로비에 긴 행렬을 이루었다. 이를 본 그랜트 대통령은 “저 로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Lobbyist’라고 부르면 되겠다”라고 말한 데서 로비스트라는 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1869년 시작한 그랜트 대통령 시절은 부패로 얼룩져 있는데,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부정부패를 일삼아서 생긴 폐해이기도 했지만,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산업이 혁명적으로 발전하면서 부패의 온상이 마련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후 정치 브로커들의 활동이 빈번하게 이루어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또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폐단이 생겼다. 그러나 돈을 주고받는 뇌물 수수 행위는 불법으로 취급하여 처벌할 수 있었으나, 그냥 단순히 영향력만 행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위는 단속할 수 없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로비스트들의 활동을 강하게 규제할 수 없는 근거는 미국 헌법의 규정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수정헌법 1조에 있는 청원권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다. 수정헌법 1조의 내용 중 “국민의 불만을 바로잡기 위한 청원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라는 구절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로비활동을 규제하지 않고 오랫동안 방치해 왔다고 한다.

이렇게 고삐 없이 행해지던 로비활동은 1938년에 처음으로 규제의 대상이 되었다. 미국내 이익단체를 위한 로비활동의 규제보다는 먼저 외국을 위한 로비활동의 규제 법이 먼저 만들어졌다. 이유는 소련, 독일, 이탈리아 등 파쇼 정권들이 미국내에서 로비활동을 적극 벌였기 때문이다. 1938년 외국로비스트 등록법(Foreign Agent Registration Act of 1938)을 만들어 파쇼 정권의 외국을 위한 로비활동을 막기 위한 법적장치를 마련했다. 그뒤 국내 이익단체를 위한 활동을 규제하기 위해 1946년 연방로비규제법(Federal Regulation of Lobbying Act)를 만들고,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1995년에는 로비활동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 of 1995)를 만들어 모든 로비활동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여 부정이 싹틀 여지를 없앴다. 이 법에 의하면, 모든 로비회사는 활동 내역을 전부 공개하고 6개월마다 정부에 그 내용를 보고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 모든 로비스트가 청렴하고 깨끗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도 로비활동은 ‘3B’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3B란 뇌물, 미인, 연회(Bribery, Beauty, Banquet) 세가지를 말한다. 남몰래 뇌물, 미인계, 향응이 오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러지는 몰라도 거의 모든 로비스트들은 본인을 로비스트라고 하지 않고 컨설턴트라고 인쇄한 명함을 들고 다닌다. 한편 로비스트들이야말로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한다.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남보다 먼저 알고 있어야 상품 가치가 있는 로비스트가 된다는 말이다. 인맥과 오랜 경험이 관건인 셈이다. 그래서 전직 고위 관료, 국회의원, 의원 보좌관 등이 로비스트가 되는 데 유리하다고 한다. 경험이 적은 현직 국회의원이 거꾸로 유능한 로비스트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미국 로비스트 회사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자그마치 수 십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판돈이 많이 오가는 도박판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기왕에 이렇게 로비스트 활동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로비스트를 이용해서라도 주어진 권익을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한인사회도 로비스트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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