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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영혼의 리모델링

어지러운 방을 둘러본다. 칙칙한 불빛 아래 술에 취한 듯 난장판이 되어 있다. 삐딱하거나 반쯤 찌그러진 몸으로 창을 덮고 있는 블라인드며 들쑥날쑥한 전구들은 외짝 양말들처럼 생뚱맞기만 하다. 천장에는 언젠가 내렸던 겨울비가 얼룩 지도를 그렸는가 하면 부엌의 찌든 싱크대 위에는 어깻죽지 빠진 캐비닛 문들이 매달려 있거나 한쪽 팔이 잘린 채 엉거주춤 공중에 떠 있다.

눈치 빠른 김 목수가 좁은 부엌 벽을 가리키며 묻는다. "이걸 죽일까요, 살릴까요. 원 참 이 집에는 죽일 것이 너무 많아서. 카운터 탑은 그대로 살려주고, 고물 싱크대는 죽여 버리고, 오븐 위 환기통은 그런대로 살리고." 그는 뭉툭한 연필로 엑스 마크를 사방에 그려대다 가끔 삐딱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자신이 할 일을 정리해 간다.

공사가 시작되면 김씨와 나는 어느 것을 죽이고 살릴 것인가에 대해 고민에 빠진다. 죽이고 살리는 것에 따라 재료가 달라지고 공사 기간이 변경되며 공사 비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기존 골조를 그대로 두고 내부를 새롭게 고치는 일 리모델링, 어찌 보면 그것은 짧은 동안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깜짝 쇼 같은 마술이다. 닭장같이 좁던 취사장이 현대식 부엌으로 탄생되는가 하면, 어두운 벽장이 산뜻한 목욕탕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때로는 부엌 내장이 온통 갈리기도 하고, 벽 속에 삭은 파이프 뼈가 새로 이식되는가 하면, 색이 다른 전등알을 부화시켜 공기의 빛깔조차 바꾸는 마술을 부린다.



집이라는 거대한 몸체 안에 장기들의 죽음과 탄생으로 거듭난 리모델링을 통해, 그것은 몇 번씩이나 생사를 오가며 변신한다. 공사에 몰두하다 보니 세상일도 새로워지려면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허점투성이의 나의 삶이 좀 더 실해지려면 몸을 운전하는 영혼이야말로 리모델링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밖으로 향한 눈이 아니라 안으로 깊어지는 눈이라고 했던가. 영혼의 눈으로 자기만이 가진 고유성과 순수함을 찾아내야 할 듯싶다. 들판에 하찮게 핀 들꽃조차 생명의 신비와 삶의 철학을 피우는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사람 안에는 얼마나 보석 같은 아름다움이 가득 할까.

영혼의 리모델링을 통해 낡고 부정적인 것을 모두 버리고 참신한 마음의 집을 지어 보리라. 하얀 벽장 안에는 인내와 이해를 가득 채우고, 갈색 마루는 신뢰와 믿음으로 곱게 엮는다. 햇볕이 춤추는 창가에는 따뜻한 격려와 작은 일에 감사하는 겸허한 마음이 쏟아지게 하고, 어둠을 밝히는 불빛 아래에서는 용서와 화해가 물결치게 하리라. 정갈한 부엌에는 언제나 취할 수 있는 순수한 영혼의 양식을 채울 뿐 아니라, 세상에서 오염된 삶의 찌꺼기들을 바른 마음으로 걸러내고, 안개꽃 피는 샤워실에서는 혼탁해진 영혼을 맑게 세척해 낼 것이다.

어느 날 삶에 지친 혼이 잠시 쉬어 갈 양이면 청정하게 리모델링된 마음의 집에서 때 묻지 않은 영혼의 차를 한가롭게 나누고 싶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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