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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생의 관절

생의 관절에 걸려 있다. 세월은 쏜살같다고들 한다. 그 말은 한 번 쏜 살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간다는 뜻일까. 나는 생은 대나무 같다고 말하고 싶다. 대나무처럼 자라면서 성장통을 겪을 때마다 마디가 굵어지며 매듭이 생기고 관절이 생긴다. 사람도 소년.청년.장년 그리고 노년을 겪을 때마다 성장점의 매듭에서 꺾이고 좌절하고 실망하며 단단하게 마디를 다진다. 각 성장기를 넘길 때마다 그 시기에 따르는 아픔과 혼동이 있다. 그 당시마다 이 세상의 힘든 고뇌는 나 혼자 짊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비바람 지난 후에 나무는 더욱 생기 있고 푸르다. 땅이 단단해지고 뿌리를 더 꼭 붙잡아 준다. 우리네 삶도 그렇다. 나의 경우 사춘기가 무척 힘들었었다. 그리고 장년기로 넘어설 때도 너무 슬펐다. 이렇게 내 삶이 내리막길에 오르는 것일까. 아직도 할 일이 많고 이룬 것도 없는데 하며 많이 괴로워했다. 이제 장년에서 노년을 바라볼 나이가 되었다. 주위에 있는 지인들이 은퇴를 이미 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친구들도 "그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 좀 쉬지"하며 종용한다. "난 일이 재미있어. 힘들지 않아" 하고 응수한다.

오늘은 진종일 비가 내린다. 그레이가 나를 내면에 깊이 침잠시킨다. 상념에 떠내려간다. 나의 가장 은밀하고 깊숙한 곳에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등을 지고 숨어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을 염려 하는가 스스로 묻는다. 침묵이 차오른다. 생동감(vitality)! 살아서 움직이는 활기! 이것이다. 나는 이것을 잃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두려운 것이다. 가장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민감한 관찰력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려 다른 의료진과 중환자를 살려내는 귀한 직업에 감사하며 긍지를 느끼는 나 자신이기에 생의 한가운데서 가장자리로 밀려남을 부정하고 대면하기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지만 언젠가는 그 부정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고 은퇴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내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받아들여라. 그것이 지혜다"는 벌써 터득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생의 마디도 있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 불어나는 체중, 하나 둘씩 찾아오는 아픈 곳들과도 이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생의 가장자리로 밀려남은 아프다.



한 때는 나이 들어가는 상황이 육체적 쇠락일 뿐 정신적으로는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며 자위하기도 했다. 또한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아도 화장을 안 해도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좋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 적도 있다. 노인이 되면 삶의 지혜가 생긴다는 말조차 무용지물이 되어간다. 요즘 젊은이들은 묻지 않는다. 구글에 정답이 있다. 백과사전도 필요 없다. 지금 바로 그들의 손 안에 세상의 불가사의가 다 들어있다. 노인이 대접받고 존경 받던 시대는 끝인가. 노인들의 넉넉함과 인자함은 우리 어렸을 적의 우상이었다. 과연 나는 타자에게 넉넉하게 대하는가. 인자하기는 한가. 우울해진다. 그러나 한 가지 믿는 진실이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진실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를 밝은 곳으로 인도한다. 지금 걸려있는 생의 관절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한 마디가 되리라.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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