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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엄마의 꽃수

내가 분꽃씨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도종환 시인의 ‘꽃밭’부분

코로나19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소소한 것들이 주는 행복감을 맛보게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맞물린 생활의 톱니에 끼여 바쁘게 질주하던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남편의 성글어진 뒤태가 보인다든가 아내가 꽃잎을 말려 일기장에 붙이는 걸 알았다든가 하는 일, 아들의 툭 불거진 울대뼈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는 등등 말이다.



한 지인은 요즘 꽃밭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고 한다. 평소 정원을 예쁘게 만들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마음뿐이었데 꼼짝 없이 갇힌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쁜 정원 만들기에 정성을 쏟을 수 있게 되었다며 즐거워한다.

엄마의 꽃밭이 생각난다. 내게 엄마의 꽃밭은 그리움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하다. 오남매 치다꺼리와 집안일로 바쁜 엄마였지만 엄마는 꽃밭을 정성으로 가꿨다. 키 작은 채송화를 앞줄에 세우고 순서대로 백일홍·봉선화·다알리아·백합 등이 의좋은 형제들처럼 다붓다붓 모여 키 재기를 하듯 꽃을 피웠다.

엄마의 꽃밭은 우물 옆 뒤란과 이어진 장독대 옆에 있었다. 돌로 단을 쌓아 올린 반듯한 사각형이었다. 나는 꽃밭 앞에 앉아 놀기를 좋아했다. 먹고 난 조개껍질을 장난감 삼아 꽃잎을 따 담기도 하고 봉선화를 찧어 손톱에 물을 들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백합이 좋았다. 향이 좋아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부터 꽃밭에서 백합이 사라졌다. 그 무렵 할머니가 오셔서 함께 살게 되었는데 백합이 피면 할머니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게 된 것은 아주 훗날이다.

할머니는 6·25 전쟁 통에 두 아들을 잃었다. 하나는 인민군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국군에게, 하나는 학도의용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어린 나이에 전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두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참혹함을 견뎌내느라 심신이 피로해졌다. 큰댁에 계시던 할머니를 모시고 온 것은 안정을 찾아드리려는 아버지의 효심이었다.

할머니가 막내아들의 전사통보를 받은 날이 백합꽃이 한창 흐드러지던 때였고 할머니가 쓰러진 자리엔 백합향기가 진동을 했다는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냄새는 장기간 기억 된다고 한다. 향기가 기억을 이끌어 내는 현상을 흔히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 받아 기억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엄마의 꽃밭은 엄마의 다락방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마음 둘 곳을 찾고 싶을 때이거나 삶의 격랑에 시달릴 때 숨어들고 싶은 장소 아니었나 싶다.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줄 아는 아이들에게 내보일 수 없는 마음의 소용돌이를 달래고 위무하던 곳. 엄마의 꽃밭을 회상하는 일은 소싯적 곱던 사진을 보는 때처럼 아련해서 서럽다.

나도 작은 마당이지만 꽃을 심고 돌본다. 패랭이와 바이올렛, 베고니아, 데이지 등이 피어 있다. 꽃밭을 가꾸는 일은 마음의 혼돈을 매만지는 일은 아닐까. 기운을 북돋아 내 안의 꽃 한 송이를 피워보고 싶은 바람 아닌가 싶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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