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사람들] ‘시카고 큰 손’ 임양례씨
“교육사업-이웃돕기가 늘 우선이었죠”
“이민 초기 비즈니스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돈을 빌려갔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빌려 준 돈을 떼이는 게 허다했어요. 아마 350만 달러는 족히 될 거예요. 필요할 때 찾고 나중에 나 몰라라 하는 이들도 있었죠.”
그는 처음 윤회설을 믿고 돈이 전부는 아니고 사람이 우선이란 생각을 갖고 살았다. 계를 5개씩 하면서 당장 돈이 필요한 주변 한인들을 도왔다. 나중에 암에 걸린 남동생이 수술로 완치되는 것을 보고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의사를 꿈꿨다. 일제시대 아버지는 독립군을 숨겨준 죄로 보급대로 끌려가기도 했고 황해도 연안 이씨인 어머니는 조선시대 마지막 사또의 후손이라고. 장교 클럽에 놀러 갔다가 미 해군 소령을 만나 결혼했다. 외동딸 샌드라는 결혼해 롱그로브에 산다.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뒀다.
수도의대부속 대학병원 간호사로 시작, 50년 넘게 일했다는 그는 1967년 별양중학교를 설립했다.
“교육사업이 우선이었죠.” 임씨는 별양중학교 졸업생이 판·검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 찾아 오는 경우가 수십 차례가 넘는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시카고에 와서도 서로돕기센터 이사를 5년간 맡았으며 로렌스길 서울 드라이브 명명을 위한 동포 모금을 주도했다.
서울시장 선행 표창을 비롯 교육감상, 대통령상까지 수상했다는 그는 12남매 중 6명이 대통령상을 받았을 만큼 형제들이 사회봉사에 많이 노력했다고 전했다.
‘위네카의 큰 손’, ‘시카고 큰 손’으로 불리던 임 씨는 로렌스 가와 서버브 여러 곳에 상가 건물, 샤핑몰 등을 운영했지만 부동산 침체와 테넌트 말썽으로 인해 은행으로 넘긴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의 이름은 어질 ‘양’, 예절 ‘예’를 합쳐 ‘양례’다. 가진 돈을 갖고 약한 자들에게 갑질하는 ‘돈벌레’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배려한 그의 삶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James Lee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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