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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정 칼럼] 즐거운 상상


몇 주 전, 교회에서 집에 오려다가 다른 분에게 전해줄 것이 생각나서 전해주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사람은 많고 주위는 시끄러운데 어디선가 “할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사람을 찾느라 나와 상관없는 일에까지 신경을 못 쓰고 계속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할머니, 할머니” 하는 가녀린 부름이 계속 되고 있어서 돌아보니 대 여섯 살 되는 여자아이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다. 잠시 아연했다! 할머니라고? 나 말이야? 아, 그렇지. 할머니 맞지….

내가 정신을 차리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세연이 봤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세연이가 누군지도 모른다. 미안해 하며 아이에게 세연이를 못 봤다고 대답을 하고는 그만, 전해줄 것도 포기하고 황황히 돌아서 나오는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스스로가 젊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이미 손자, 손녀도 있지만 둘 다 아직 어려서 할머니 소리를 못 들어본데다, 불특정 타인으로부터 할머니라는 호칭은 생소한 경험이어서 약간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가 그만 어린 아이에게 제대로 한 방 맞은 듯 했다.

나이가 많아지는 것은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이지만 나이가 많은 것이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노력은 해야 하는 것 같다. 나이 드는 모든 사람의 바람은 ‘잘 늙는 것’이다. 잘 인내하고 잘 살아내서 나이만큼 인격도 성숙해지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늙을 수 있다면 젊은 것 보다 늙는 것이 훨씬 좋은 것 아닌가 싶다. 말처럼 쉽지 않아서 그런 노인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으니 탁상공론에 불과한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명실공히’ 나는 할머니가 되었다. 실제로 손자와 손녀까지 두었고, 낯 모르는 아이에게 할머니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이제 자타공인의 할머니가 된 것이다. 이왕이면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그런데 좋은 할머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부부가 될 때도 어떠한 교육 없이 부부가 되고 또한 아무런 교육 없이 부모가 된다. 뜨겁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한국 교육열의 맹점을 보는 것 같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부부가 되는 것과 부모가 되는 것에는 정작 아무런 교육이 없이 ‘무작정’ 시작되니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아이를 낳기 전에 나라에서 하는 부모교육을 몇 주라도 체계적으로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도 거의 의무적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자식을 둘을 키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한테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잘못한 것이 많았다. 사랑했지만 사랑의 표현 방법도 잘 몰랐고 훈육 방법도 몰라서 ‘부족한 내 생각’대로 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부모니까 당연히 사랑했고 최선을 다해서 키웠지만 그런 부족했던 점이 아이들한테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많이 미안하다. 좋은 부모였는지 자신할 수 없는데 좋은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좋은 할머니가 되는 법을 배운 바 없으니 혼자서 더 열심히, 궁리를 해 본다. 책에서 본 것처럼 사랑이 많고 포용력 있는 할머니를 닮아 보면 어떨까. 아이들의 지혜를 깨우쳐 줄 수 있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아니면 인자하고, 어쩌고 저쩌고 한 내 상상 속의 할머니는 어떨까 하며 생각을 거듭해도 묘수가 없다. 아무래도 또 사랑만으로 ‘무작정’ 할머니 노릇을 하게 될 것 같다. 멀리 살아서 할머니 노릇할 기회도 적은데도 상상의 날개는 좀처럼 접어지지 않는다. ‘
뜬 장군’과 ‘울보 공주’에게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상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다. 아들을 통해 주신 아이들, 그리고 딸을 통해 생길 아이들을 상상하고 기다리는 것도 설렌다. 낯 모르는 아이의 ‘할머니’ 소리가 가져다 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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