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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옥 칼럼] 구푼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6 16:05

‘아홉’은 ‘열’에서 하나 모자라는 숫자인데 이 숫자에는 선조들의 교육적이면서도 심오한 뜻이 담겨있다. 우리 선조들에게 대보름날은 정초의 설날 버금가는 큰 명절이었다. 둥근 보름달을 뒤에 두고 처녀와 아낙들은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오랑캐를 무찔러 달라고 했고 또한 풍년을 소원했으며, 동네 꼬맹이들은 깡통 불꽃놀이를 하며 지난해의 재앙을 없애고 한 해의 복을 기원했다. 그런가 하면, 집안에서는 호도나 잣 또는 땅콩 등 기름기 있는 음식물을 꼬챙이에 끼워 불을 붙이면서 한 해의 희망을 기도했다.

이러한 놀이 행사를 할 때도 선조들은 아홉 수를 지켰다. 즉 강강수월래는 아홉 바퀴째에서 역으로 돌았고 깡통 불꽃놀이의 회전 수도 아홉이요, 소원기도도 아홉 번을 되풀이했다. 우리 선조들에게는 대보름 전날에 행하는 ‘아홉 차례’라는 세시 민속이 있다. 이날 밤에 글방에 다니는 아동들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어야 하고, 새끼를 꼬면 아홉 발을 꽈야 했다. 나무를 하면 아홉 짐을 해야 하고 빨래를 해도 아홉 가지, 물을 길으면 아홉 동이, 매를 맞을 때도 아홉 대를 맞아야 한다.

지혜로운 우리 선조들이 왜 이토록 ‘아홉’ 숫자를 선호했는가. 선조들에게는 100%보다 99%를 선호하는 구푼철학(九分哲學)이 있다. 살아오면서 몸으로 터득하고 경험한 처세철학이다. 고문(古文)에 의하면 부자가 머슴을 고를 때 낫 가는 것을 보고 골랐는데 날을 십분 세우는 머슴보다 구분쯤 날을 세우는 머슴을 선호했다. 날을 십분 세우면 잠시는 잘 들지만 구분 세운 날보다 쉽게 무뎌지기 때문이다. 십분 날을 가는 머슴은 일시적으로 완벽할 지는 몰라도 여유가 없고 성격이 모나기 때문에 머슴끼리 융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경험의 발로이다.

그래서 선조들은 “밥은 배불리 먹지 말고 세력은 남김없이 부리지 말며,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말고 복을 남김없이 누리지 않는 것이 화를 멀리하고 복을 누리는 길이다”고 가르친다. 때문에 옛 선비들은 선조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경계하기 위하여 의기(?器)라는 대나무 컵을 가까이에 놓고 살았다. 의기라는 대나무 통은 물이 구푼 쯤 차면 반드시 밑이 빠져 물이 쏟아지게 되어있다. 즉 인생에 있어나 권력이나 재물 및 명예 등은 구푼을 넘겨서는 모두 쏟아져 버려 무(無)가 되고 화(禍)가 된다는 구푼 철학의 구현이다.

‘과욕’은 반드시 화(禍)를 부른다는 선조의 가르침은 역으로 일푼은 남을 위해 쓰라는 뜻과 일치한다. 배불리 먹지 말고 일푼은 남에게 베풀고,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일푼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데 할애하며, 권력과 세력이 있으면 일푼은 남에게 배려하고 양보하라는 말이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 때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앙드레 말로는 건축물을 허가할 때 건축비의 1%는 반드시 조각 등 미술품을 내외에 설치토록 법제화했다. 건물주가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유익한 시각 효과를 내는 배려를 해야 하고, 도시 경관이나 도시 인상에 품위와 멋을 내게 하는 공동 효과를 위한 제도이다. 그러니까 뒤를 이어 이탈리아와 덴마아크에서는 1%보다 많은 2%요, 독일은 총 건축비의 5%를 공동 사회 미적 효과소요자금으로 결정했다.

남의 사정 보지 않고, 눈총도 의식하지 않으며, 윤리와 상도덕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기에 자기만을 위한 ‘과욕’을 부리면 시간이 문제이지 언젠가는 반드시 화를 당한다는 진리를 선조들의 구푼철학에서 배워야 한다. 과열경쟁과 장소 불문의 개업 행태를 진단해 주는 동포 사회의 제도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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