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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말벌 사고

[애틀랜타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7 16:30

밤사이 비바람이 몹시 불더니 아침에 나가보니 드라이브웨이와 집 주위에 작은 나뭇가지랑 나뭇잎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집 뒤에 있는 큰 나무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올여름에는 유난히 비가 자주 온다 했더니 어제는 천둥 번개와 비바람까지 겹쳐서 전기도 몇 번 끊어졌었다. 그동안 미국 여러 곳을 이사 다니며 살았지만, 날씨가 험할 때 이곳은 유난히 정전사태가 잦은 것 같다. 지상에는 전선주도 없고 전선은 지하에 묻혀 있을 터인데 모를 일이다.

집 옆 패티오 주위에 있는 키 작은 관목 사이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무심코 집어드는데 갑자기 손등이 따끔해 왔다. 처음에는 무슨 가시에 찔렸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선 찔린 곳에 심한 통증이 왔다. 연이어 벌 몇 마리가 내달았다. 몸통에 노란 줄무늬가 뚜렷했다. “앗, 옐로재킷(yellow jacket)!” 순간적으로 몸을 피하며 속으로 외쳤다. 미국에서 제일 잘 알려진 말벌이 옐로재킷이다.

기겁을 해서 말벌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통증과 더불어 손과 팔에 두드러기가 돋고 몹시 가렵기 시작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른쪽 손등 세 곳에 벌침 흔적이 보였다. 벌에 쏘인 곳은 감각이 둔해지고 손이 고무풍선처럼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누라가 이건 응급 상황이라며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뭐 괜찮겠지” 하며 미적거리는 내 등을 떠밀어 차에 태우고 차를 몰았다. 병원보다는 우리 가족 주치의 사무실이 더 가까워 그리로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 러시아워가 지난 뒤라 차가 막히지 않았다.

옐로재킷하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내가 초임 교수로 있던 대학에서 어느 날 수업 중에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말벌 한 마리가 강의실 안으로 날아든 일이 있었다. 이를 제일 처음 본 학생이 “Yellow jacket!”하고 소리쳤다. 그 소리가 나자마자 모두 자리를 박차고 교실 밖으로 줄행랑을 쳤다. 마치 사자나 호랑이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모두 혼비백산했다. 그때까지 말벌을 별로 크게 두렵게 생각하지 않던 나는 학생들의 반응으로 말벌이 무서운 공포의 대상임을 알 수 있었다. 옐로재킷은 몸의 노란 줄무늬가 마치 노란색 재킷을 입은 것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세상 살다 보면 별별 일을 다 당한다고 하지만, 늙마에 그 악명 높은 공포의 말벌에게 직접 생체 실험을 받게 된 것이 좀 맹랑하게 느껴졌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더니 벌에 쏘이긴 생전 처음이네.” 옆에서 운전하는 마누라에게 내가 변명처럼 던진 말이다. 어려서 시골에 살 때 산과 들을 헤집고 다녔어도 벌에 쏘인 일은 한 번도 없었다느니, 요새는 벌침의 독으로 병을 치료한다느니 하는 말도 했다. 무슨 말을 해서라도 마누라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항히스타민제 주사 한 대 그리고 스테로이드가 든 처방 알약 몇 개로 이틀 만에 부기도 빠지고 벌침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콘도 HOA에 연락했더니 즉시 말벌집 퇴치 전문가들이 나와서 관목 밑에 있는 말벌집을 제거했다. 말벌집을 제거하러 나온 친구의 말이 말벌은 인간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해충이라고 한다. 물론 꿀벌에 쏘여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지만, 꿀벌은 꽃에서 꽃으로 꽃가루를 옮기는 수정 작업뿐 아니라 꿀과 각종 유용한 부산물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익충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말벌은 꿀벌집에 침입하여 꿀벌을 대량 학살하고 꿀벌집을 초토화하기 때문에 양봉업자들의 최대의 적이라는 말도 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들면 익충·해충의 구분이야 순전히 인간의 주관적 관점에서 나온 것 아닌가. 생태계 전체의 큰 그림을 놓고 보면 꿀벌이나 말벌이나 자연 질서, 먹이 사슬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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