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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아령과 쇠지팡이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서 아침에 산책하다 보면 양손에 아령을 들고 걷는 사람들을 더러 보게 된다. 보통 젊은 축이다. 그들은 우리 부부처럼 다소 느긋하게 보통 걸음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보폭도 길고 걷는 속도도 빠르다. 우리 옆을 지나치는가 하면 순식간에 저만치 앞으로 휘적휘적 멀어져 간다. 손에 든 아령으로 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팔 운동까지 동시에 하면서 걷는 것이 씩씩해 보인다. 걸으면서 유산소 운동과 팔의 근육 운동도 함께하니 전신 운동이 되고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대개 무리가 없도록 가벼운 아령을 드는 것이 보통인데 조금 무겁다 싶은 놈을 그냥 들고만 걷는 사람도 있다. 무거운 놈으로 팔굽혀펴기를 계속하며 걷는 것은 아마 무리인가 보다.

1950년대 말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 친구들과 아령으로 몸을 만드는 일에 한참 몰입했던 일이 있었다. 아령으로 알통과 가슴을 다져 우람한 팔뚝과 가슴 근육을 뽐내고 싶은 치기(稚氣) 어린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때다. 우리는 그때 유행하던 ‘유젠 산도우식’ 아령 운동법 지침서를 읽으며 근육질 몸매를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있었다. 낡은 냄비를 두드려 틀을 만들고 거기에 시멘트를 부어 수제 역기도 만들어서 썼다. 요새 헬스장에 흔한 다양한 근력운동 장구와 무게가 층층인 바벨 플레이트(철제 원반)는 찾을 수도 없고 꿈도 못 꿀 때다.

아령을 들고 팔운동도 겸하며 걷는 사람들을 보면 6·25 난 다음 해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골목길에서 보았던 노인이 생각난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목 ‘긴담 모퉁이’를 돌아서니 짤막한 키에 몰골이 꾀죄죄하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반백의 노인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노인은 묵직한 쇠로 된 물건을 한 손으로 짚고 서서 이야기 중이었다. 이야기를 대충 듣고 보니 노인이 짚고 있는 것이 노인의 지팡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지팡이치고는 좀 엉뚱하게 생겼다. 지팡이 손잡이는 여느 지팡이처럼 둥글게 꼬부라져 있었으나 그 밑으로 가운데 부분은 엄청나게 두꺼운 쇠로 된 파이프였다. 파이프의 둘레가 어른 손으로 두 뼘이나 될 정도로 두꺼웠다. 파이프의 밑 부분은 가늘고 뾰족했다. 그때까지 내가 전혀 본 일이 없던 괴상하게 생긴 물체였다. 사실 지팡이라고 하기보다는 무슨 건설장비나 자동차의 부속품, 아니면 역도 선수나 근육 단련하는 사람들이 쓸 운동기구처럼 보였다.

그 노인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노인이 오래전에 무슨 큰 병을 앓고 난 후에 기운이 전 같지 않고, 또 나이 들며 근력이 약해진다고 느끼게 되었다. 팔심을 기르기 위해서 보통 지팡이 두께의 쇠 파이프를 잘라서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다니다 보니 지팡이가 가볍게 느껴졌다. 지팡이의 무게를 늘리기 위해 쇠 철판을 지팡이 길이로 잘라 지팡이를 둘러싸서 땜질했다. 그리곤 또 얼마 후 지팡이가 또 가볍다고 여겨져 무게를 더 늘려야 했다. 이런 식으로 지팡이가 가벼워질 때마다 철판을 계속 입히다 보니 철판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무거운 괴물 지팡이가 탄생한 것이다.



노인 앞에 서 있던 건장한 청년이 그 노인에게 지팡이를 한번 들어 봐도 되겠냐고 물었다. 청년이 지팡이를 건네받고 한 손으로 들었다 놓는 것이 힘겨워 보였다. 지팡이를 노인에게 돌려주며 그 청년이 “할아버지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세요” 하니까 지팡이를 돌려받은 노인이 흐뭇한 미소에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지팡이를 이리저리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다. 지팡이가 들썩일 때마다 둔중한 소리가 났다. “별거 아냐.” 노인의 대답이었다.

얼마 후 노인은 그 자리를 떴다. 모두 경이에 찬 표정으로 호기 있게 지팡이를 옮겨가는 노인을 바라봤다. “한 겹 더 입혀야겠어.” 노인이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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