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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지를 바라보다] 연리지를 바라보다

산책한다고 나갔던 송이 할머니가 뒤뜰 숲 근처 나무 밑 의자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혹시 탈진한 것이 아닌가 싶어 물병을 들고 가까이 갔더니, 할머니가 손으로 나무 한 그루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소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뿌리에서부터 땅 위 오 십 센티미터 줄기까지 한 몸이 되어있는 연리지 나무가 있었다. 나무줄기가 합쳐진 둥치 위쪽을 바라보니, 쭉 뻗은 소나무를 버팀목 삼아 도토리나무 줄기가 뻗어있는 형상이었다.

십 년 전 새로 이사 왔을 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그동안 큰 소나무 뒤에 숨겨져 있던 도토리나무 나이테가 늘어나 자라면서 소나무 살을 파고들어 서로 맞닿게 된 듯했다.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나 줄기가 서로 엉키고 붙어 자라면서 마치 한 그루 나무처럼 연결되는 것이다. 연리는 보통 같은 종류의 나무에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데, 나뭇가지가 이어진 경우는 ‘연리지’라고 부르고, 줄기가 합쳤을 때는 ‘연리목’이라고 한다. 뒤뜰의 연리지는 소나무와 도토리나무의 줄기가 합쳐진 형상이니 ‘연리목’이라 해야 맞겠다.

언젠가 한국에 여행 갔을 때 연리지 나무 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그 옆에다 비(碑)까지 세워놓고 기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미국에서는 공원 숲속에서 조금만 살펴보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별로 신기하게 느끼지는 않았다. 그랬던 것이 고령의 노인들이 거주하는 곳 뒤뜰에서 연리목을 발견하고 보니, 혼자 된 할머니들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연리목을 찬찬히 살펴보니, 뒤쪽의 도토리나무는 제 앞에 서 있는 소나무에 기댄 듯, 나뭇가지로 감싸 안은 채 줄기를 뻗고 있었고, 소나무는 마치 도토리나무를 받치기 위해 서 있는 듯, 독야청청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두 나무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부부간의 사랑에 ‘연리지’를 붙이는 까닭을 알 것도 같았다. 사람에게도 서로 끌려 연분을 맺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나무가 만나 ‘연리목’이 된 것을 인생사로 치면, 역시 부부의 인연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연리가 되는 과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비좁은 숲속에서 세찬 바람에 서로 부딪혀서 상처가 생겨야 한다. 빗줄기도 맞고 때론 햇빛을 받으며 찢긴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나고, 해마다 새로운 나이테를 만들며 부대껴야 한다. 껍질이 벗겨지고, 밀려나서 맨살이 그대로 맞닿았을 때 비로소 생물학적인 연결이 시작된다. 숲속 나무도 그럴 진데,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오랫동안 부부로 사는 일이 어찌 쉽기만 하랴.

우리 부부를 생각해 보았다. 남편과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사는 동안 내가 편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남편 때문은 아니었을까. 제 가족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자신의 바람이나 아픔에는 아랑곳없이 묵묵히 살아온 남편의 모습이, 마치 제 몸에 상처를 참아가며 살을 파고드는 도토리나무를 품은 소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남편이 나처럼 힘들다고 엄살을 떨고, 아플 때마다 투정을 부렸더라면, 참을성 없는 내가 어찌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었으리.

연리지는 각각 다른 나무가 하나로 합해지는 것만으로도 부부 사랑의 의미가 크다. 그뿐일까. 두 나무가 오랜 세월 부대끼며 애틋한 정을 키우며 한 몸이 되고 난 후, 한 나무가 죽더라도 남겨진 나무가 뿌리를 통해서 영양분을 계속 공급해서 살아있도록 돕는다고 하니 어찌 ‘연리지’를 부부 사랑의 귀감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십 년 전 남편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금도 그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남편과 나, 둘 중에 누가 혼자 남게 되더라도, ‘연리지 나무’처럼 꿋꿋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도 생긴다. 나이가 들었나, 하늘 아래 모든 존재가 스승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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