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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순 칼럼] 그거 한번 해봐야겠다!

첫 책을 출간해준 출판사의 편집장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국내 편집위원들과 프리랜서 기자 및 피디들과 협업으로 한국어 교육 신문을 창간하려고, 한국어 교육 전문가들로부터 원고 투고를 받고 있습니다. 교사 이야기, 한국어 교육 정책 칼럼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이 모이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미주 통신원으로 활동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이런 일을 하려면 책상 앞에서 궁둥이를 찰싹 붙이고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데…고통의 도가니 속에서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들을, 그 생고생을 날보고 또 하라고? 따끈따끈한 이메일을 설렁설렁 읽어 내려가던 순간 ‘골치깨나 아픈 제안을 받아 들일까, 말까’ 혼란스러웠다.

젊은 날 같으면 밑천도 없으면서 계산기 두드리지 않고 마구 덤볐을 일을 아무도 몰래 ‘할까, 말까’를 고심하느라 온종일을 바쳤다. 이튿날에야 의사를 밝혔으니 이는 영혼이 세월의 빛에 사위어가는 명백한 증거다. 어쩌면 내 생애 마지막 도전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인생의 시계로 치면 나는 오후 4시, 일몰 전 마지막으로 뜨거워질 수 있는 황금기 말이다. 그런데 시작도 안 해보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라니! 십수 년 전 소 떼를 몰고 방북해 분단된 조국의 7천만 동포들을 희망과 설렘과 흥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어떤 상황에서도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현대의 거장 ‘고 정주영 회장의 “이봐! 그거 해봤어?”라는 어록 한 줄이 떠올라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시르죽은 영혼에 불이 켜진 양 희망이 솟구쳤다. “저 그거 해봐야겠어요!”

아등바등 앞만 보고 달리다가 아차 싶어 뒤돌아보면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일장춘몽 같은 지난 날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오늘을 붙잡으라’고 외치는 것이리라. 오늘, 지금이 생애 가장 젊은 날이고 뇌세포가 가장 밀도 높고 촘촘한 날이라고 말이다. 천지를 안고 일렁이는 봄 햇살에 나날이 물이 오르는 연둣빛 나무들, 어둠을 뚫고 올라와 꽃샘 추위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우쭐우쭐 커가는 생명의 기운에 마음을 다잡았다. 인생 오후 4시, 나른하여 널브러지지 않으려면 한 움큼의 도파민을 충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어이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금쪽 같은 기회에 머뭇거릴 이유도 시간도 없다는 듯 휘리릭 명쾌한 답을 날렸다. 귀한 기회를 주신다니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겠냐고. 꽃중년의 말석에 앉은 눈치 빠른 편집장이 새로운 자극에 가슴 벌렁거리는 내 속내를 눈치챘는지 단박에 답을 보내왔다. “우선 미주 통신원으로서 쓰고 싶은 주제들을 시리즈화 시켜서 책 차례를 잡듯이 잡아보시라”고 말이다.



“우리 나이에는 어떤 일을 앞두고 할까 말까 할 때는 해야 해!”
맞닥뜨리는 일마다 고군분투하는 열정 많은 친구가 새 일 앞에서 어물쩍 어물쩍 흐릿해지는 기억력을 핑계 삼아 그만 주저앉으려던 내게 강펀치를 날렸다. “기회는 팡파르를 울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밤도둑처럼 살금살금 아무도 모르게 온다. 그것 네게 주어진 기회야. 해봐!” 덩달아 자신을 ‘문장 노동자’라고 일컫는 장석주 시인의 한 줄 메시지가 용기를 보태주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이스탄불의 블루모스크도 땅을 다지고 첫 번째 벽돌을 쌓는 시작에서 비롯되었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맞다. 세상만사 시작은 미미하다. 허나 그 시작에 끊임없이 정성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그 끝이 창대해지더라. 요즘 부지불식간 시간을 도둑맞는 기분이다. 하루하루가 뭉텅이로 잘려나간 듯, 월요일인가 싶으면 주말이 당도해 있다. 도둑맞은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영혼을 지배하는 전두엽도 그토록 팔팔하던 육신도 얄짤 없이 흐르는 시간에 압도당해 데이 드림에 빠진 양 몽롱할 때가 부지기수다.

‘녹슬지 말고 마음껏 써서 차라리 닳아지는 것이 낫다’던, 누군가의 외침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전대미문의 봄이다. 크든 작든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한여름 매미처럼 치열하게 울어봐야지. 한 시절 살아냈으니 고통과 인내에 대한 내성도 견고하니 그리 난망할 일도 아니다. 무엇이 되었건 새로운 자극에 희열을 느끼는 것이 사람 아니던가. 이왕 할 거라면 신명 나게,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늘 새로운 자극이니, 미주 통신원 그거 한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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