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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 칼럼] 한반도 패망을 도운 미국사람 스티븐스

자신의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가끔 눈에 띈다. 심지어 국가 원수의 지위에 있는 사람도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저지르기도 하니, 보통사람은 오죽하겠는가? 한반도가 일본에 강점될 무렵에 일본에 충성을 다하면서 한반도가 일본의 손아귀에 넘어가도록 일본을 도와준 미국인이 있다. 더럼 스티븐스(Durham Stevens)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결국 죄에 대한 벌로 한국인의 손에 죽기는 했지만 말이다.

스티븐스는 1851년 워싱턴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을 마치고 그는 1873년 미국 국무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의 율리시즈 그랜트 대통령 행정부에 든든한 배경이 있었던지 국무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주일본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되었다. 외국어 배우는 능력이 뛰어났던 그는 일본어를 금세 마스터하는 탁월함을 보이며 일본에서 근무하게 된 것을 무척 좋아했다. 업무 능력이 남달랐던 그는 1878년에는 주일본 공사가 자리를 비울 때 그 대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일본 근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와서 국무성에 사표를 내고, 즉시 주워싱턴 일본 공사관에 취직했다. 영어 소통을 위해 일본 정부가 그를 고용한 것이다. 그가 일본어 실력이 좋고 일본을 무척 좋아하는 점에 일본이 눈독을 들인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다음 해 일본 정부는 그를 일본 동경으로 발령을 내어 일본 외무성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그를 이용해 일본이 갖고 있던 다른 외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바로 잡기 위함이었다. 일본이 개항할 때 거의 모든 서구의 열강들은 자기 나라에 유리하도록 일본과 조약을 체결했으므로 일본은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후 스티븐스는 1884년 일본 대표단을 따라 조선에 가서 조선 정부와의 교섭을 자문했다. 이에 대한 공로로 일본 정부는 그에게 3등 공로훈장을 주었다. 일본 정부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여 한반도에는 해를 끼쳤다는 뜻이 되겠다. 1888년 무렵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 외교관 자격으로 워싱턴에 부임하여 근무했다. 워싱턴 근무 때 그는 멕시코와 일본 사이의 조약을 성사시키는데 일본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것이 일본으로서는 외국과 맺은 조약 중 최초로 평등한 조약이었다. 얼마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1895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을 두둔하는 글을 미국 언론에 적극 게재하는 등 일본에 적극적인 충성을 보였다. 당연히 일본 정부는 그에게 퍽 많은 훈장을 주었다. 미국인이지만 일본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을 일본 정부가 인정해 준 셈이다.

1904년 일본은 스티븐스를 당시의 조선 정부에 파견했다.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일본이 시키는 대로 말을 듣고 있던 조선은 일본의 협박을 거부할 수 없어 그를 정부 고문으로 채용했다. 일본은 일본 사람을 조선 정부에 고문으로 파견하여 대한 제국이 일본의 말을 듣도록 하고 싶었겠지만, 남의 이목도 있고 하니 미국인을 고문으로 내세우는 교활한 술수를 쓴 것이다. 스티븐스는 결국 일본의 침략 야욕을 위해 앞장서서 일본인보다 더 노력했다. 1906년 어느 날엔가 스티븐스는 5년 내에 일본은 한반도를 합병하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실제로 약 5년 후인 1910년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켰으니 그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일본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1908년 스티븐스는 미국에 잠시 귀국하여 조선은 일본에 합병되어야 조선에 유익하고, 한반도 사람들도 이를 바라고 있다고 망언을 늘어놓고 다니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1908년 3월 23일 장인환 열사가 쏜 총에 맞아 이틀 후에 사망했다. 미국인이면서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야욕에 힘을 보탰던 미국인 스티븐스는 이렇듯 비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제명에 죽지 못하고 한 애국지사의 손에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를 위해 몹쓸 짓을 하는 것을 하늘도 가만히 두지 않나 보다. 참고로 장인환 열사는 이 저격 사건 이후 체포되어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나 193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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