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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나의 고도를 기다리며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에 새들의 코러스가 요란한 아침이다. 집 앞에서 라이드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봤다. 옆에 세워둔 골프백과 함께 만든 그림자 둘이 왠지 후줄근해 보인다. 그 정경이 아주 오래전에 본 연극을 상기시켰다.

안국동에 있는 한국일보 사옥의 고층에 있던 극장에서 본 아일랜드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다. 감성이 여린 고등학생 때였는데 잿빛 배경에 앙상한 나무 하나 달랑 있던 무대에서 허름한 옷차림의 두 남자가 코믹하고 이상한 대화를 이어갔다. 내용을 따르지 못하고 어리벙벙하게 보다가 극장을 나온 후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잊어버렸다. 그런데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의 정체를 모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쩌면 모나리자의 비밀스런 미소처럼 고도는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졌나 보다.

이렇게 그림자를 보고 옛일을 회상하니 그때 연극을 같이 본 친구가 보고 싶었다. 솔직히 사람과의 접촉을 그리워하니 한 추억에 이어서 다른 기억들이 마치 메두사의 머리처럼 내 머리 밖으로 줄줄이 돋아나서 어지럽게 흔들거렸다. 보고 싶은 지인들과 여행 중에 만났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사연들이 세상살이의 거울이 되어서 무엇인지 모르고 기다리는 나의 고도가 어렴풋이 모습을 갖춘다.

오래전에 갑상선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 되어 치료를 받을 적에 의사가 6개월밖에 못 살 것이라 했지만 당당하게 26년을 더 살았고 아직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남부 토박이 지인은 현재 항암 치료를 받는 아내와 서로 응원하며 산다. 작년에 50주년 결혼기념을 축하했고 그동안 11명의 손주를 만난 축복도 감사한다. 그들처럼 멋진 노부부가 있다. 언제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70대 중국인 부부의 아름답던 모습은 내 마음에 잔잔한 기쁨을 줬다. 웃는 표정까지 같던 그 부부를 둘러싼 분위기는 세상은 참 살기 좋은 것임을 증언했다.



처음 만나 인사하자마자 대뜸 아들은 성형외과 의사이고 자신은 공학박사임을 자랑하던 미네소타에 사는 인도계 남자는 요즈음 누구에게 그의 존재를 확인시킬까? 그가 반지조차 끼지 않은 내 손을 보며 자기 아내는 금덩어리를 많이 가졌다고 하자 옆에서 배시시 웃으며 팔에 주렁주렁 무겁게 걸려있던 순금팔찌들을 보여주던 여인은 집에서도 불편한 팔찌들을 끼고 있을까? 그리고 오클라호마주에 살면서 반세기 전에 부동산에 발을 들여놓은 시작부터 나중에 성장한 딸들까지 합세해서 현재 집을 63채나 소유하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말해주던 남자는 코로나19팬데믹 사태에 세입자들에게 착한 렌트를 주는지 궁금하다.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사람임을 강조한 캐나다에 사는 여자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납하던 해에 캐나다로 이주한 사람들이 중국을 보는 관점이 다름을 설명해줬다. 더구나 시애틀에서 사는 주 공무원 여인은 부모는 중국인이었지만 자신은 미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녀에게 부모의 모국은 큰 의미가 없었다. 재미나게도 그녀의 영국계 남편은 미국 영주권자로 만족하고 영국시민권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람 심하던 날 외롭게 바다를 지켜보던 여인은 결혼 38년에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과 이혼했다.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이제는 만사 편안하고 그동안 받았던 남편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너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만난 아이 셋을 가진 무직의 여자와 결혼한 아들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들었다. 엔지니어인 멀쩡한 아들이 갑자기 불어난 4명의 가족을 부양하느라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했다.

이렇게 제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을 가진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니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무엇을 중요시하며 어떻게 살든 모두가 귀한 삶이다. 특히 올해는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니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과거에 내가 가졌던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지 민망하다. 요즈음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나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이며 나는 내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일까? 의문을 가지면서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을 감사한다. 단순한 일상에서 행복도 느낀다.

어쩌면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전처럼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 피부로 느끼고 세상 나들이 자유롭게 하며 지구환경을 맘껏 감사하는 안전한 환경인지도 모른다.


영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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