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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시카고, 시카고 사람들] 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름한 시카고의 음악처럼...

전경우

80년대 초 겨울, 대입 수능시험을 끝낸 우리들은 시내 음악다방으로 모여들었다. 호기롭게 담배를 피우거나 여종업원 누나에게 아는 척을 하며 어른 흉내를 냈고, 또래 여학생들과 만나 분수에 맞지도 않는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지긋지긋한 학교와 입시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과 해방감이 치기 어린 고등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다가올 미래는 그러나 불안했고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남자 친구를 기다리던 여학생은 신청한 음악을 들으며 성냥개비 탑을 쌓고 있었다.

여학생의 성냥개비 탑이 쌓였다 부서지고 또 쌓였다 무너져 내리는 동안 옆자리의 우리들은 재떨이 속 꽁초를 다시 주워 피워 물며 무료함을 달랬다. 다방의 종업원 누나는 이제 그만 나가주시라는 눈치를 주었지만 우리들은 못 본 척 허공을 바라보았다. 딱히 갈 곳도 없었거니와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술집을 가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방에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뮤직 박스의 장발 디제이는 쉬지 않고 음악을 틀어주었다.

'누구나 가끔씩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어요.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었죠. 연인들조차도 서로에게서 떨어져 휴식이 필요하죠. 저를 지금 안아주세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It's hard for me to say, I'm sorry.~~’



시카고는 그렇게 음악으로 만났다. 어린 우리들은 시카고(Chicago) 밴드 앨범 속 뮤지션들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전자기타를 치거나 드럼을 두들기며 대학 가요제에 나가는 꿈을 꾸었다. 손톱만큼 남은 담배가 당장이라도 입술을 태울 듯 바짝 타들어갔지만 녀석은 제 옆구리를 치면서 기타 치는 흉내를 냈고, 한 녀석은 드럼을 치는 듯 허공에 주먹을 날려댔다.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의 음악은 봄날 빗방울처럼 경쾌하고 기분이 좋았지만, 시카고는 감미로웠지만 무겁고 슬펐다. 시카고는 어린 청춘들에게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것이었다.

뮤지컬 영화 <시카고> 는 무겁고 끈적거렸다. 시카고의 음악과 영화의 이미지가 도시 시카고에 오버랩 되었다. 범죄와 마약, 그런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 본 시카고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시카고는 밝고 유쾌했으며 범죄의 기미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호수의 맑은 물과 개성 넘치는 건물들, 그리고 평화롭고 여유로우면서도 은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

청춘의 흔적이 아주 사라지지 않은 어느 좋은 시절 찾아갔던 시카고는 한 번 살아봤으면 싶은, 참 좋은 곳이었다. 시카고의 넓은 호수를 바라보며 지나간 어린 청춘의 시절이 떠올랐던 것은 시카고의 음악이 생각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카고의 음악처럼, 시카고가 그립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저 당신이 떠나지 않기만을 바란답니다.’
It's hard for me to say, I'm sorry I just want you to stay / <전직 기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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