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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인품의 평준화

나이 들면 모든 게 평준화 된다. 젊을 때 예쁘다고 뽐내던 친구들도 못난 인물로 속 끓이던 친구들도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동창회 가보니 누가 누군지 구별 안 된다. 얼마만인가! 고교 친구들 만나는 기쁨에 흥분해서 태평양을 잽싸게 건너 ‘미국 촌사람 티 안 내려고’ 내 딴에는 때 빼고 광내고 다듬고 꾸며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다. 파티 시간이 가까워 오자 비스무리하게 나이 든 중년 아줌마들이 비슷한 디자인과 색깔의 옷차림으로 삼삼오오 요란하게 지껄이며 도착했다.

설마! 나의 귀엽고 청순한, 칠흙 같이 반짝이는 검정머리 두 갈래로 땋은 그 때 그 시절 친구들은 아니겠지? 세월이 분홍빛 캔버스에 황칠을 했나? 몇몇을 빼고는 길에서 마주쳐도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다. “그럼 나는?” 너무 놀라 후다닥 호텔방에 올라가 거울을 본다. 친구들 얼굴이 내 얼굴이다. 매일 보니까 늙어가는 내 모습, 달라지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40대는 미모, 50대는 지성, 60대는 물질, 70대는 정신, 80대는 목숨이 평준화 된다고 한다. 평준화는 수준이 서로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수준은 사물의 가치나 질의 기준을 말한다. 수준(水準)은 수면의 위치인데 육지의 높이를 재는 기준이 된다. 내 인생의 육지는 얼마나 탄탄하고 높아졌을까. 내 영혼의 바다는 늘푸른 비늘로 퍼덕이는 활어들의 어장이 됐을까. 바위에 부딪혀 허공에 산산이 부서져도 다시 밀려오는 파도로 생의 굴곡을 견뎌내고 있는지. 밤마다 파도는 신음소리 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종국에는 소실점에서 만난다. 빼어난 미모와 빛나는 청춘, 높은 지성과 뛰어난 학문, 시대를 뛰어넘는 재능과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비싸고 특별한 열차표를 산다 해도 철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빈 손으로 하차한다. 긴 자로 대보면 서로 비슷하게 닮아간다.

그런데도 살아있는 동안 유일하게 평준화 안 되는 게 한 가지가 있다. 인격이다. 인격은 평준화 되지 않는다. 인격은 돈으로 살 수 없고 재주로 흉내낼 수 없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의 내뱉는 허튼 수작이나 얼토당토 없는 말짓거리는 인품의 하향평준화가 맺은 결과다. 멋진 옷이나 지식, 재주나 유명세가 인품을 담아내지 않는다. 인품은 오래된 고목나무가 젊음과 청춘을 삭여낸 세월의 나이테다. 모진 북풍 몰아치는 겨울 홀로 선 고목나무를 보라. 소리 죽여 울고 있지만 한결같이 마을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비록 나무 둥치 갈라지고 껍질이 벗겨져도 허리 굽혀 아부하며 타협하지 않는다.



작은 나무 깔보며 내려다 보지 않고, 라이락 향기에 가슴 아려도 보낼 사람은 말없이 떠나보낸다. 사랑을 구걸 하지도 않고 다가오는 사랑을 내치지도 않는다. 촐삭대며 가진 것 자랑하지 않고, 비루하게 두 손 비비며 구걸하지 않고, 남의 인생 흉내내며 살지 않는다. 욕심 부리며 못 오를 나무 오르다 허리 다치는 일 없고, 누가 누가 잘 사나 곁눈질 하다 사팔뜨기 되지 않고, 내 인생 사는지 남의 인생 사는지 헷갈리지 말고, 멀리 보며 천천히 가고, 정의는 목숨 걸고 지키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하향평준화는 아니올시다’ 즉시 사절하고, 깜냥이 안 되는 사람도, 차원이 다른 세계의 삶도 품어주고 안아주고, 사랑이던 물질이던 내 몫이 아닌 것은 애초에 남의 것이라 생각하고, 돼지 목 따는 소리로 ‘미워도 다시 한번’ 크게 부르면, 만가지 꽃향기 담은 하늘빛 구슬병의 요술공주가 시린 가슴을 따스한 인품으로 채워주리니. (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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