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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의학자의 레시피, 미국을 사로잡다

할머니에게 요리 배워
대학때 궁중요리 전수도

존스홉킨스대서 박사취득
CDC 역학연구원으로 근무
'에브리데이 코리언' 출판
아마존 쿡북 코너 1등
"요리를 매개로 소통하는
요리전문가 되고파"


선입견을 깨고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이들의 공통점, 그 매력에 빠져 드는 순간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방질병예방통제센터(CDC) 역학연구원 이승희(34) 박사도 그러하다. 이력서만 놓고 보면 그녀는 엄친 딸이다. 얼굴 예쁘고 공부 잘하고 성격까지 좋아 세상 모든 딸들의 공공의 적이라는 엄마 친구 딸 말이다. 그러나 대화가 깊어질수록 모범생 이면 청개구리 기질 다분하고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자유로운 영혼과 마주치게 된다. 게다가 이제 겨우 입신(立身)을 넘긴 나이에 세상과 삶에 대한 고민도 꽤나 깊어 보였다. 지난해 11월 '에브리데이 코리안(Everyday Korean)'을 출판하면서 요리에 관심 많은 미국 독자들을 단박에 사로잡은 반전매력 가득한 그녀를 만나봤다.

#할머니 손맛을 닮다

군산에서 태어나 청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녀는 고교 졸업 후 2002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친할머니께서 돌봐주셨는데 할머니는 하루 종일 부엌을 떠나신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유년시절 부엌은 제 놀이터였죠. 거기서 어깨너머로 요리를 보고 배워 초등학교 고학년 땐 웬만한 음식은 뚝딱 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갈고 닦은 요리 실력은 대학 입학 후 빛을 발해 그녀의 자취집은 그녀의 음식을 맛보려는 친구들로 늘 북적였다. 덕분에 3학년 때는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한국 전통요리 연구모임인 '한국의 맛 연구회'에 들어가 궁중요리를 전수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모교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는 2008년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같은 해 존스홉킨스대학 공중보건 대학원으로 유학 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부 교수였던 부모님이 미시건주립대 교환교수로 와 2년간 미국에서 생활한 것이 계기가 돼 학창시절 내내 꿈꿔왔던 미국 유학길이었다.

"학위 취득 후 한국에서 교수 임용이 되려면 새로운 분야인 영양 역학(nutrition epidemiology)을 전공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많아 이를 전공으로 택했어요. 그런데 워낙 생소한 학문이다 보니 공부를 쫓아가는 것만도 힘들더라고요. 결국 첫 학기말 역학에서 C를 받았죠. 그러면서 심한 우울증을 겪기 시작했어요."

#CDC 역학연구원이 되다

지금껏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스포트라이트만을 받으며 살아온 그녀에게 당시의 좌절은 꽤나 큰 충격이었을 터. 그러나 이후 그녀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때까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혹은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기준을 좇아 살아왔다는 걸 깨닫게 됐죠. 사래서 이후 정말 제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고심 끝 내린 결정은 대학원 내에서 전공을 바꾸는 것.

"대학원을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그만두더라도 다시 도전해보자 싶어 제가 잘하고 좋아할 분야를 찾다 영양인류학을 선택했죠. 직접 사람들을 만나 리서치하고 결과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연구를 하다 보니 공부가 즐거워졌죠."

그녀는 2013년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그해 질병통제센터(CDC) 역학 전문요원(EIS)으로 선발됐다. 이후 2년간 그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감염 지역을 방문해 역학 조사를 담당했는데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5년부터 지금까지 애틀랜타 소재 CDC 본부 역학연구원으로 근무 중이다. 그리고 의사인 네이슨 콴(32)씨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행복한 요리, 행복한 글쓰기

이처럼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그녀의 일상이 시끌벅적해진 것은 지난해 입양아 출신의 유명 푸드칼러니스트 김순애(48)씨와 함께 '에브리데이 코리안'이라는 한식 요리책을 출판하면서부터. 출판과 동시에 아마존서점 요리책 분야 1등을 필두로 작년 말 쿠킹 채널 푸드네트워크가 선정한 '성탄절 선물로 좋은 요리책'에도 오르는 등 단박에 미국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공동저자인 김순애씨와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시 프리랜서 통역관으로 일하던 그녀에게 '서른 살의 레시피'의 한국어판 출간 차 방한한 김씨의 통역업무가 주어지면서 친분을 쌓게 된 것. 공식행사뿐만 아니라 전국 맛집을 함께 다니며 절친이 된 두 여자는 언젠가 한식 책을 내자고 손가락을 걸었고 2014년 김씨가 이를 공식적으로 제안해오면서 출판이 성사됐다.

"누구나 쉽게 요리할 수 있는 한식 요리책을 만드는 것이 기획의도였죠. 그래서 전통 한식뿐만 아니라 김치슬로, 불고기 푸틴, 고추장 마요 연어구이 등 타인종들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퓨전 한식도 다수 수록돼 있습니다."

요리책 속 레시피 120여 가지는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책 사진 속 요리하는 손이 바로 그녀. 책을 준비하면서 그녀는 대중들의 한식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기 위해 2015년 인스타그램(instagram.com/koreanfusion)에 자신이 만든 요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테스트 삼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현재 3만4000여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책이 출간 된 뒤에도 여전히 인기몰이 중이다. 책이 출판 되고 해를 넘겼지만 그녀는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지경. 이번 LA행도 북 사인회 때문이었는데 5월에는 오스트리아 유명 식당에서 그녀를 초청, 팝업 한식당을 열 계획이다. 이젠 한숨 돌릴 법도 한데 그녀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느라 여전히 분주하다. 최근 그녀가 '꽂힌' 분야는 와인.

"한식과 와인이 의외로 잘 어울려요. 봄나물과 버건디 샤도네이, 파전과 쇼비뇽 블랑, 순대와 샴페인 등은 정말 환상의 짝꿍이죠.(웃음) 그래서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식과 이에 어울리는 와인을 알리고 싶어요. 또 블로그든 쿠킹클래스든 요리를 매개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요리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싶고요. 그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말괄량이 소녀 삐삐 롱스타킹은 말했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건 참 멋진 일이네요.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기잖아요.' 아홉 살 소녀의 이 어메이징한 통찰력이라니. 맞다. 계획대로 살아지는 인생이란 존재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사는 것만큼 싱거운 삶도 없을 테니. 그 우연과 필연 사이를 유영하며 그녀가 만들어갈 새로운 길이, 멋진 지도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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