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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작은 풍요로움

나이가 들어서오는 식탐인지 모른다. 요즈음의 나는 이름이 잘 알려진 '대형 C마트' 그로서리에 다녀오는 차 안에서는 풍성하고 든든한 부자가 돤 기분이다.

잘 익은 사과 큰 팩, 일명 '신이 내린 완전 푸드'라는 아보카도 (신이 주시지 않는 열매가 있을까만), 치매에 좋다는 블루베리, 남편이 365일 먹어도 싫증 내지않는 중간크기의 파파야 2개, 자르는 수고를 않아도 되는 탐스러운 빨간색 방울 토마토, 비타민의 보고라는 삼색 고추, 뛰어난 항암제로 보도되는 마늘과 양파 뭉치, 동네 마트에서의 반 값인 유기농 계란 한판내지 두판, 철분의 필수 우유 한 갈론, 10인 가족이 먹고도 남을 크기의 소고기.닭고기.생선 각각 한 팩씩, 6개월을 버틸 양(?)으로 포장된 치즈나 여러가지 기호식품이며, 3~4가지 견과류에다 소형체구의 여인이 들기에는 힘겨운 식수 병 꾸러미, 용도에 따라 구색을 갖춘 초대형 휴지 뭉치 등을 싣고 나면 어느덧 자동차는 뒷 자석까지 꽉 차버린다. 어쩌다 같은 날 자동차에 기름까지 가득 채우면 풍성함은 몇 배로 증가한다.

밥처럼 매일 먹어줘야 하는 알약들이 7일로 나누어진 통 안에 칸칸이 들어가고, 그것이 한 달 여분의 양이면 더 한층 마음이 느긋해진다.

몇 해 전 친구가 한 말이다 "나의 지갑에는 항상 동그라미 하나가 모자란다"였다. 그 친구와 남편은 부부가 다 높은 연봉의 전문직을 가지고 아이들도 잘 자라서 주위의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순간적으로 참 기발한 농담(Joke)이라 생각되어 그 후론 나도 같은 멘트로 곧장 흉내를 내기도 했다. 이곳의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 동그라미의 위력이 더 절실하다.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온 후에는 챙겨야 되는 식구 숫자가 20여 명이나 된다. 또 각자의 맡은 업무에 따라 액수도 크고 작은데 그 봉투들을 채우느라 신경이 꽤나 쓰인다. 손자 손녀는 물론 중년이 지난 아들과 딸, 사위, 가깝고 먼 조카들까지 그 이름의 목록도 결코 짧지는 않다.



젊어서 기력이 있을 적에는 이곳저곳 세일을 찾아서 다녔다만 빨간 봉투로 산타 선물을 배달한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이 봉투에 '동그라미 하나'를 더 보태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라는 생각이다만, 그렇게 될 확률이 오히려 '동그라미=Zero'다. 그래도 그 '0 =공'이 부족한 봉투를 수북하니 챙겨놓으면 마음은 한결 감사하고 왠지 더 풍성하다. 풍요로움이란 크고 굉장한 곳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터득하고 나니 순간이 더욱더 윤택해 지는 느낌이다.

7학년으로 진급을 하고 언제 부터인가? 이 힘드는 숫자들이 아닌 조금은 다른 곳에서 더 풍요로워지려고 애를 쓴다만 잘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겨울을 잘 견디며 오랫동안 창가에서 화사한 꽃을 지탱해주는 작은 '난'도 고맙기 그지없다. 조화이면서도 처음 오는 손님을 생화로 감쪽같이 착각하게 만드는 진노랑 해바라기는 사철 나의 부엌 카운터에 자리하고 있다. 키가 크고 마치 내가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연상이라서 한층 나의 일상에 고요함을 주는 일을 한다. 이발소를 금방 다녀온 손질한 남편의 반듯한 뒷 모습이나 어지러운 집안의 정리를 끝내고 편안히 소파에 누워 듣는 클래식음악 한 곡도 작은 풍요로룸을 주는 이유가 충분히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될 일이다.


김옥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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