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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유유상종(類類相從)과 한반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부쳐 ②

한 공식 만찬 행사가 있었다.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초대장을 받았다. 그런데 보좌관들의 실수로 이들은 이 행사를 가든파티로 알았다. 물론 행사의 성격에 맞게 옷차림을 했다. 넥타이 없이 오픈 셔츠에 캐주얼 양복 윗도리. 현장에 도착한 이들은 놀랐다.

먼저 클린턴. 그는 정장하고 온 참석자들을 모아놓고 설득전에 돌입했다. 디너 에티켓 전통을 꿰뚫고 있는 듯 과거 사례를 열거하며 캐주얼 옷차림으로 정식 만찬에 응해도 큰 실례가 아님을 설명했다. 그의 언변에 설득된 참석자들은 자신들의 넥타이마저 풀어버릴 태세였다. 문제는 클린턴의 말이 하도 길어 만찬 시작이 한참 늦어졌다. 그는 바쁘다며 자리를 떴다.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속어를 동원해 속삭였다. "구라 하나는..."

다음으로 부시가 도착했다. 그도 놀란 기색이 뚜렷했다. 부시는 그냥 만찬장을 떠났다. 다시는 쓸데없는 이따위 행사에 오지 않겠노라며. 집으로 돌아간 부시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가든파티나 디너파티 모두 시간 낭비고 사회악이라며 금지령을 운운했다. 역시 뒷말이 있었다. "그 성질 하고는..."

오바마가 행사장에 들어왔다. 그는 놀랐지만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평소 그의 행동철학은 'No Drama(감정폭발이나 개인감정의 노출을 자제하는 성품)'이다. 오바마는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셔츠의 목 단추를 채우고 나왔다. 역시 패션니스타 다웠다. 넥타이는 없어도 그렇다고 캐주얼은 아닌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그는 조용히 저녁을 먹고 나왔다. 자신의 어중간한 옷차림에 눈길이 쏠리지 않도록. 파티 장소를 떠나는 그를 향해 누군가가 속삭였다. "소심하기는..."



트럼프가 왔다. 원색의 소위 골프셔츠 위에 재킷을 걸쳤다. 그의 선거 캠페인 필수용품 중 하나였던 붉은 모자까지 쓰고 왔다. 'Make America Great Again'. 그의 선거 구호가 박힌 모자이다. 지나친 캐주얼 차림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트럼프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만찬을 정원으로 가져가서 먹자! 이 좋은 날씨에 왜 갑갑하게 실내에서 저녁을 먹나." 그는 결국 테이블을 가든에 다시 세팅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일단 가든파티로 전환하니 트럼프만이 제대로 옷을 입은 모양이 됐다. 트럼프는 입의 양 끝이 눈초리를 향해 올라가는 그 특유의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며 오른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뒷말이 들렸다. "욕심 하나는..."

초청에 응할 것으로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도 파티장에 왔다. 검은 '인민복' 차림이었는데 윗단추 두 개를 풀어 캐주얼을 연출했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의 참석자들을 보고 놀라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실내 만찬이었구만. 기까지거 어려울거 있간." 김정은이 아이디어를 냈다. 정원의 나무를 베어 실내 만찬장으로 옮겨오면 가든파티 겸 디너파티 아닌가. 그러면 옷차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른 참석자들은 어안이 벙벙한데 오직 한 사람이 김정은의 아이디어에 엄지를 치켜세웠다. 트럼프였다. 김정은을 향한 누군가 속삭였다. "배짱 하나는..."

클린턴 행정부 이후 북미 관계는 이 가상의 파티 상황과 같다. 클린턴은 그의 뛰어난 언변과 설득력을 동원해 1994년 '제네바 합의(북한과 미국간에 핵무기 개발에 관한 특별계약)'를 이끌어 냈다. 미국판 '퍼주기' 논란을 불러온 합의였다. 6년 뒤인 2000년 10월에는 한국전쟁의 베테랑 조명록 인민군 차수를 백악관에서 맞이했다. 그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었다. 유사시 미국과의 싸움을 관리하는 자리다. 인민군 정복을 입은 노병과 젊은 미국 대통령의 악수 장면은 백악관의 기록 사진 중 최고 충격의 이미지로 기록된다. 클린턴은 이어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으로 보내 답방의 예의를 갖추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제네바 합의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을 끌었다. 임기 3개월을 남긴 클린턴의 평양방문은 무산됐다. 그 후 3년 부시는 북한이 제네바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다며 이를 파기했다. 부시는 이미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었다.

오바마 시절의 북미 관계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드라마' 없이 위기를 관리하려 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억제하면서, 적극적 만남도 아니고, 초강력 제재도 아닌 중간지대에서의 기다림. 그는 이를 "전략적 인내"라고 불렀다.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국제 환경에 맞추어 북이 살 길을 찾을 때까지 인내키로 했다. 북은 살길을 찾았다.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말 그대로 올-인 했다.

그 후 등장한 트럼프는 ABC와 D를 동원했다. 'Ambiguity' 'Belligerence' 'Consensus' 그리고 'Direct-Talk'이다. Consensus(합의)부터 분석하면 유엔을 통한 최강의 압박과 제재에 대한 국제적 컨센서스를 도출해 냈다. 다음은 전쟁 준비를 완료했다는 호전성, 즉 Belligerence를 감추지 않았다. 동시에 트럼프는 Ambiguity, 모호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김정은과 마주앉아 동네친구처럼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도 말을 안 들으면 김정은의 머리위에 화염을 쏟아 부을 것이라며 상대를 헷갈리게 했다. 가장 신뢰하는 측근인 딸을 북한 대표가 있는 평창으로 보내면서 북측 인사에게 눈길도 주지 말라 했다.

결과는 Direct Talk, 북미 정상회담 합의다. 실내 만찬을 정원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역사적 욕심과, 정원의 나무를 베어 실내로 가져올 수 있는 생존을 위한 배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유유상종이니 성공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길주 / 버겐커뮤니티칼리지 역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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