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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눌려진 네잎클로버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맥도널드에 갔다. 친구는 조금 늦는 지 오지 않고, 난 지난 추억을 떠올리게 됐다. 바로 여기가 햄버거를 파는 곳 아니겠는가…큭큭 웃음이 난다.

내게는 맥도널드 햄버거에 관한 눌려진 네잎클로버 같은 추억이 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노스캐롤라이나에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 부부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남편은 공부는커녕 돈을 벌어야겠다고 심각하게 생각 하고 있을 때였다. 무능하게도 연년생의 둘째를 덜컥 임신한 나는, 내 잘못만 같아서 주눅이 들었고,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다 쓰게 될 까봐 극도의 내핍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친정의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의 선택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고 아무도 등 떠밀어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결혼만 시켜주면 됐지, 잘살던 못살던 엄마는 걱정 말라며 동갑내기의 결혼을 염려하는 어머니에게 큰 소리를 탕탕 친 전적이 있어서 무조건 군소리 없이 잘 살기를 결심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가난은 나의 전의를 꺾기에 충분했다.

첫째를 돌보던 분주한 때에도 불쑥 맥도널드 햄버거가 떠오르고 잠자리에 고단한 몸을 뉘어도 햄버거가 불쑥 떠올랐다. 그때는 차도 한 대라 남편이 타고 나가면 난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어야 했다. 며칠 동안이나 그저 딱 두 개의 빅맥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 신세가 처량해서 슬프던 어느 날 남편이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집에 올 때 빅맥 하나만 사달라고 큰 용기를 내어 부탁을 했다. 남편은 별 생각이 없이 "햄버거 먹고 싶었어?" 하며 들어올 때 사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두 개 사다 달라할걸 왜 하나라고 했을까라며 아주 많은 후회를 했다. 그저 딱 두 개만 먹으면 좋았을 빅맥을 미안한 마음에 하나라고 말한 걸 하루 종일 후회했다. 저녁의 노을이 어슬어슬 내려앉을 무렵 내 가슴은 기대로 쿵쿵거렸다. 드디어 남편 차의 불빛이 집 앞에 멈추고 기다리던 나는 너무 급해서 딸을 안고 현관에 나갔다. 나와 딸을 보며 활짝 웃으며 내리는 남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순간 난 '그럼 뒷좌석에?'하며 기대했지만 뒷좌석은 가지도 않고 해바라기처럼 큰 얼굴에 한 가득 무심한 미소를 담고 내게 닦아온다. 난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햄버거, 햄버거 어디 있어!"하고 두 다리를 뻗고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뭐 남편이 당황한 거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이 사건은 두고두고 내게 서러움으로 남았고 내가 남편이 무심하다고 놀릴 때마다 등장하는 레퍼토리의 일 순위가 되었다.

햄버거를 썩 좋아하지 않는 나는 가끔 햄버거를 앞에 두고 떠올리는 나만의 눌려진 네잎클로버 같은 추억이다. 그때는 너무 서러워 두 다리를 뻗고 앉아 꺼이꺼이 서럽게 울었지만 지금은 그 추억이 너무 소중하고 또 아름답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앞이 안 보이는 갑갑한 안개 속 같은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가니, 안개 속일 때도 꼭 내게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됐다.

일 년간의 노스캐롤라이나의 극도의 내핍생활은 천방지축 물정 모르던 나를 단단하고 야무진 두 아이의 의젓한 어머니로 성장시켰고, 1달러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그 이후에도 많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있었지만 지나고 나면 보였다. 내 삶에 무엇을 훈련 받았는지…나의 어떤 부분이 성숙했는지…. 돌아보면 좋았던 경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경험도 다 나를 성숙시키는 인생의 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 고마운 경험들이다. 그리고 내 삶을 통해 인연이 있어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또 서로에게 실망하여 스쳐 지나간 사람들, 그들이 내게 준 영향들이 모두 나를 만들어간 내 인격의 밥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하루하루 경험하는 이 시간도 또 지나면 또 하나의 눌려진 네잎클로버가 될 것이다.


박향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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