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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오호 또 큰 별이 지는구나

우리나라 정치의 큰 별이던 운정 김종필 선생이 별세를 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뺄 수 없는 3김 중 마지막 별이 졌습니다. 정치인답지 않았던 정치인, 너무나 감상적이고 문학청년 같았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5.16 혁명의 주역이었고 브레인이었고 작전참모였습니다. 그는 4.19이후 혼란한 정치와 부패한 군을 바로잡기 위하여 동창생인 육사 8기생들과 군 정풍운동을 주도하다가 그 당시 지휘관들의 힘에 눌려 군에서 쫓겨납니다. 그는 처삼촌이며 성격이 강직하고 부정에 휘말리지 않아 많은 장교들의 존경을 받고 있던 박정희 소장을 등에 업고 혁명을 일으켜 성공을 합니다.

그는 비록 한동안 제2인자였지만 똑똑한 그를 질시하는 세력에 의하여 항상 핍박을 받고 밀려 났습니다. 자기가 만들고 물려준 2대 중앙정보부장이였던 김재순 부장 때부터 감시를 받고 3대 김형욱 부장에게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7번이나 가택수색을 당하고 감시가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만든 공화당에서도 말려납니다. 쫓겨난 그는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묘한 말을 남긴 채 권력의 핵심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외유를 합니다.

정말 혼란하던 시절 혁명을 성공시킨 그는 권력자로부터 제재를 받습니다.

제3공화국의 비사를 읽어보면 그가 박대통령을 만나려고 하면 후임 비서실장은 한사코 방해를 하고 참소를 하고 그를 제재했다고 합니다. 운정은 머리가 좋았다고 합니다. 육군사관학교 8기 졸업할 때 1060명 중 2등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문학가였고 음악가였고 화가였습니다. 그는 일요화가협회 회원이었고 그가 그린 그림은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음악가였습니다. 5.16 혁명 축하 파티에서 그는 아코디온과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아주 명 연주였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밀어 부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그런 방법으로는 대통령이 되지 않는다면서 기회를 흘러 보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용기 없는 충청도 핫바지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처럼 야수성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선비처럼 진흙탕 물이 튀길라치면 한발 물러나고 DJ가 오면 그의 손을 잡아주고, YS 가 오면 그의 손을 잡아줘 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 당시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았던 제주도에 만든 그의 농장도 모두 빼앗기고 말년에는 궁핍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오래 전 육군병원 외과부장으로 있을 때 시찰을 왔던 그와 만난 일이 있습니다. 나의 손을 잡고 우리 젊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좋은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하며 내 손에 쥐어준 명함에는 김종필이라는 단 세 글자 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직함을 적을 수 있었는데 그는 말년에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열매는 국민이 다 따먹고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네'라는 말이겠지요. 많이 아쉽고 허전한 마음으로 큰 별이었던 정치인 운정 선생에게 조의를 표합니다.




이용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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