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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짙은 녹색의 슬픔

초록은 인간에게 마법과 같은 에너지를 준다. "색채는 인간에게 마법과 같은 에너지를 준다."라고 말한 앙리 마티즈의 말을 패러디 해본다. 나날이 녹음이 짙어간다.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고 편안한 색이 초록이라고 한다. 잔디, 풀, 나무 등등 우리는 초록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너덜너덜한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숲 속을 찾았다. 짙은 녹색의 슬픔이 뚝뚝 떨어진다. 숲 속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몰랐다. 숲 속에 대해 갖고 있는 상상, 환상, 이상에 차분해졌고 그리고 한없이 뿜어대는 산소를 마음껏 마시리라 기대하고 나섰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자란 녹음은 한창 물이 올라 진해지고 깊어지고 성숙해가고 있었지만 불쑥 떨어진 슬픔 하나가 내 시선과 다리를 붙잡고 있었다. 주어진 환경과 불협화음을 빚은 여린 가지들이 초록을 안은 채 나뒹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삶도 그렇다. 겉에서 보기에 온전해 보여도 그 이면에 문제가 있고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항상 자신과의 갈등이고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

딸아이가 'sweet sixteen' 생일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nothing happened"하며 실망의 눈빛으로 허공을 더듬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16살 생일에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또 몇 달 전에는 70세 생일을 맞은 대선배님 한 분이 "자괴감이 스멀거려서…" 말끝을 잇지 못했던 기억도 되살아난다.

지난 몇 주 동안 우울하고 불안했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나답지 않았다. 항상 활기차고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듣곤 한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 봐 쓰다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 골대가 없는 농구장에서 던지는 연습을 했다. 공을 주면 살아서 받아내려고 멈추지 않았다. 누구의 공인지도 모른 채 죽으면 안 되니까, 산 것을 가만두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죽음이었다.'



오병량 시인의 '편지의 공원'에서 나를 읽는다. 나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공이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과 강박관념에 스스로를 옥죄며 살고 있지는 않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책감과 자괴감에 상실감까지 나를 묵과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공을 한번 놓아볼까, 시간을 한번 파괴해볼까, 무를 한번 창조해볼까 하는 창백한 기운이 나를 유혹한다. 지금까지는 공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초긴장을 하며 살아왔다. 공을 놓칠까 겁이 났고 안절부절 했다. 타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예민한 자의식과 섬세한 감수성이 자신을 괴롭혀온 동력이었다. 고무줄도 계속 당기고 있으면 결국은 끊어진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아픔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다. 활기차다가도 우울하고 명랑하면서도 쓸쓸한 순간을 맞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 곧바로 공을 다시 살려낼 것임을!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어온 자신의 내면에서 짙은 녹색의 슬픔을 읽는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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