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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밭농사, 사람 농사

요즘 나의 일과는 밭의 물주기로 시작한다. 몬태나 막내네 집 이야기다. 막내는 옆마당에 조그만 밭 두 박스(직사각형 나무 박스 2개, 제법 크다)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 도마도, 호박, 케일, 브로콜리, 시금치, 깻잎, 부추, 고추, 상추, 몇 가지 허브들을 심었다.

물을 주는 일만 하면 사실 별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작물이 자라는 사이에서 기승을 떠는 잡초들이다. 그 녀석들은 어찌 그리 성장판이 발달했는지, 자고 나면 한 줌씩 올라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나도 성질이 급하므로 눈에 뜨이면 맨손으로 뽑다가 잘 안 뽑아지는 놈을 만나면 그제서야 장갑을 찾아 끼고 녀석들을 뿌리채 흔들어 뽑는다. 그러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뒷마당엔 영선씨와 루시아씨네 집에서 떠온 묘목들을 심었다. 깻잎과 잎이 빨간 시소, 취나물, 참나물, 돌나물 모종들이다. 캐리언에 넣어 와서 도착한 날 점심 얼른 먹고 시작해서 밤 9시에야 겨우 끝냈다. 평생 시골에 살아본 적도 없고, 농사도 지어본 적이 없지만, 어깨 너머 눈치로 땅을 파고 뿌리를 세워서 묻었다. 뿌리가 찌그러지지 않고 자리 잘 잡으라고 내 딴엔 머리를 써가면서 정말 정성을 다했다.

대륙성 기후라 몹시 건조한 몬태나는 금방 땅이 마른다. 처음엔 신경이 쓰여서 아침저녁으로 문안하며 열심히 물을 주었다. 가져온 배추와 열무 씨도 한 쪽에 심고, 실란트로는 물에 불렸다가 심으면 빨리 싹이 난다고 해서 그렇게 심었다. 씨 뿌린 후 2주는 지나야 싹이 난다고 하니 기다릴 일은 까마득했지만, 아침 상쾌한 공기 속에 나가 잡풀을 뽑고 물 주고 하는 일은 즐거운 노동이다.



손자 블루는 내겐 오직 하나뿐인 손자다. 손자에겐 딸들처럼 연주자로 키워 스트레스 주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냥 아이답게 자라는 게 가장 좋은 교육인 것 같다. 잘 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유치원에서 지능 수준 시험을 봤는데, 친구 딸은 거의 100점을 받은 반면 블루는 어이 없이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딸은 "엄마, 이러다 블루 지진아 되는 거 아닐까 겁나요." 하며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는 큰 이모에게 일주일에 한번 첼로 레슨도 받게 하고, 토요일마다 가는 한국학교 숙제도 반드시 검사한다.

일주일에 30분 하는 첼로 레슨도 블루는 온갖 핑계를 대며 꾀를 부리고, 떼를 쓰고, 울고, 난리 굿이다. 그래도 반년쯤 하더니 딸 제자들 발표 연주회에서 피치카토로 '반짝반짝 작은 별'을 연주했다.

10월이면 블루가 6살이 된다. 자라는 작물을 블루와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지만, 블루도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고, 영양을 주고, 필요 없는 떡잎은 따주면서 블루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다행히 블루 엄마가 이젠 매일 첼로 연습을 시켜야겠다고 작심했다. 나도 블루 한국어 공부에 더 집중하겠다고 자진해서 충성 서약을 했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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