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
더위가 한 풀 꺾인 8월 말에 한국 나들이를 간다. 15년 만의 외출이다. 이번 나들이의 목적은 조금 다르다. 잊고 살았던 뿌리를 찾고, 보고 싶은 친구들을 만나고, 고국일주를 계획했다.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과 대학 졸업 후 40년 이상 교류가 없었으니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의 생생한 현장이 기대된다.이 가슴 설레는 만남을 여기 살고 있는 지인들과 공유하다 보니 공통적인 조언을 듣게 되었다. 20대에 헤어진 친구들을 60대에 만나면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까. 남자들은 모두 대머리 아니면 백발일 것이고 여자들은 완전 할머니가 되었거나 두루뭉실해졌을 텐데, 그러면서 하나같이 서울 가면 성형수술 받고 오란다. 가격은 눈꼬리만 잡아주는데 200불로 시작하니 뭘 망설이냐며 성화다. 평소 얼굴의 주름보다 내면의 주름을 펴자는 모토로 살고 있는 나도 주위의 재잘거림에 솔깃했다. 정말 한번 용기를 내볼까.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특히 백내장 수술 후 시력이 좋아진 결과 안경이 필요 없게 되자 내 눈가의 주름은 보아주기 힘이 들던 참이었다. 맞다. 그까짓 것 한 바늘만 떠서 눈가 잔주름을 잡아 올려준다는 데 그리 겁낼 것이 없으렸다.
한 두 달 정도 마음의 동요가 일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갈 시간이 가까워지자 와락 겁이 난다. 그리고 잠깐이었지만 내 몸에 칼을 댈 생각을 했음에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지금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이만하면 충분히 예쁘다. 더 이상을 바라면 그것은 욕심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고 가장 매력적이다'라고 마술을 건다.
생로병사! 인간은 태어나서 나이 들고 병들어 죽는다. 각 나이에는 그 나이에 걸 맞는 격이 있다. 어린 아이의 순진함, 사춘기의 풋풋함, 청년기의 열정, 장년기의 성숙미 그리고 노년기의 노련미. 우리 나이에 생긴 얼굴의 주름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니고 평생을 투자해서 얻어진 결과다. 연륜이다. 연륜이란 그 동안 겪어낸 희로애락의 산물이다. 열심히 살아온 삶의 결정체다. 우리 속담에도 40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든다는 말이 있다.
20대 중반에 허리를 다쳤었다. 그 후 내 허리는 평생 고질병이 되었다. 2012년 7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마취 직전 집도의가 좀 어떠냐고 물어 통증이 거의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그는 수술을 취소했다. 난 이참에 아예 통증의 뿌리를 뽑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뒤였으나 그는 60세의 허리를 16세의 허리로 만들 수는 없다며 직립보행의 인간이 겪어야 하는 척추의 노화를 다스리며 살라고 충고해주었다. 난 그때 깨달았다. 나이에 따라오는 신체적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함을! 지금 내 나이는 그 동안 살아온 내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며 은퇴를 준비 할 때다. 그 동안의 경륜으로 후회 없는 죽음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지금도 충분히 예쁜 나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운동하러 간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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