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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저녁이 되어야 아침이 온다

1. "어머니! 회사 계속 다녀야 해요? 회사 그만두면 안될까요?" 5년 전 한국에 사는 남동생의 맏아들인 조카는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대기업 L의 가전부문 연구인력으로 채용되었다. 초봉이 4600만원으로 미국의 사회초년생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액수로 말이다. 거기에 미혼이라 기숙사 생활과 함께 회사가 일체의 식사를 제공하다 보니 돈 쓸 일이 별로 없다며 동생부부는 자랑이 많았다. 그런데 그 자랑은 채 일년도 못 갔다. 언젠가 부터 아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고 말이 없어지기 시작하였다. 조심스럽게 회사이야기를 끄집어내면 화를 내는 경우도 많다. 주말에 집에 들른 아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해줘도 귀찮아하며 온종일 방안에 틀어 박혀 잠만 잔다. 그리고는 한다는 말이 회사 그만 다니면 안 되느냐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얼굴에 병기가 완연하여 억지로 병원에 입원검사까지 의뢰했을 정도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양호다. 단지 기승전스트레스 즉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범이라는 아는 진단이 나왔다.

조카가 전해준 L사의 이야기는 참담하고 화가 났다. 조카의 첫마디는 "제가 기계입니까? 사람입니까?"이다. 도대체 무슨 회사가 이렇게 일만 강요할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면 빨라야 저녁 10시 경이나 기숙사로 돌아온단다. 도무지 먹고 일하는 것 외에는 생각할 여유나 감상할 틈조차 없게 뺑뺑이를 돌린단다. 어쩌다 생산제품에 하자라도 발생하거나 클레임이라도 생기면 개발팀이 원죄인양 불호령이 떨어지고 속죄인이 되어 몇 날 며칠을 회사에서 밤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란다. 그래서 많은 입사동기생들이 일년을 못 채우고 짐을 싸는 경우가 많다며 제발 어머니를 잘 설득해 회사 그만 다닐 수 있게 도와달라고 애원까지 한다.

2. 지난 여름 한국방문길에 그 조카를 만났다. "oo야! 요즘도 회사 그만 두고 싶다며 어머니를 조르니?"하고 물어본다. 그런데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조카의 대답은 '아니요'다. 이유는 전혀 달라진 근무시간과 충분한 잠, 사람 같은 대접에 있었다.

요즘 한국에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자고 나면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소득주도성장, 혁신경제에 공정사회 등 듣보지 못한 단어들이 매스컴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갈지 헷갈리긴 하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주어진 것에 감지덕지 하며 기계처럼 일만 하다가는 시대착오자란 오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대부분의 큰 회사는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노동시간을 칼같이 지키거나 심한 경우 저녁 6시반만 되면 메인 컴퓨터 전원을 꺼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사실 조카는 질병을 앓고 있지 않았다. 글로벌시대에 역행하며 밤낮없이 일만 강요하는 회사에 분노하고 저항했을 뿐이다. 달라진 근무환경은 그의 언어를 순화케 하여 더 이상 회사 원망이나 그만둔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요즘은 자신의 팀이 열심히 일해 회사로부터 인센티브로 100만 원을 받아 자신이 요즘 취미생활에 폭 빠진 스쿠버다이빙 장비구입에 쓰는 대신 부모님 집에 새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며 전액을 통장입금 시키더라는 것이다.

2016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평균 1764시간보다 305시간이나 많아 멕시코에 이어 2위다. 현재 한국의 근로법에 적시된 주간 근로시간은 68시간으로 주 40시간이 일상인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28시간이나 많이 일한다. 따라서 68시간의 근로시간을 줄여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노동계의 청원이 담긴 법안이 2004년 이후 국회에 계류되었지만 대기업과 연계된 보수단체의 입김에 밀려 번번히 통과가 좌절되어오다14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8월 27일 국회 환노위는 우선 30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부터 마의 68시간의 장벽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는 보도다.

성경 창세기에 천지창조의 비밀이 있다. 말씀으로 빛과 어둠, 육지와 바다, 해와 달. 별을 지으시는 하나님의 일 하시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정리하시는 하나님의 언어습성이 인상적이다. 그냥 해가 돋으니 또는 날이 밝으니 첫째 날, 둘째 날 하시지 않으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 둘째 날 등으로 계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저녁이 아침을 부르는 것처럼 일주일 내내 같은 방법의 날짜계산을 되풀이 하고 계실까? 혹시 저녁이 없는 우리 인생을 염려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신실하신 배려가 이 말 속에 숨어있는 것은 아닐까? 언뜻 생각해 본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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