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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칼럼] 기업 과잉저축의 원인과 결과

일반적으로 가계는 벌어들인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고 기업이 이를 투자 재원으로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많은 선진국에서 과거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바로 기업이 투자보다 저축을 더 많이 하는 '기업의 저축과잉(corporate saving glut)'이 그것이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업의 투자액이 저축액보다 연평균 940억 달러 많았으나 최근 10년 동안에는 저축액이 투자액을 연평균 1970억 달러 정도 상회하였다. 미국 외에 독일, 일본 등도 같은 상황이며 이제는 저축의 주체가 가계라는 경제학 교과서의 내용을 수정해야 할 정도로 기업의 저축 규모가 커졌다. 투자를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차입해야 했던 기업들이 막대한 저축 자금을 쌓아두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자주 회자되는 답변은 기업들이 경기부진으로 미래에 불안을 느껴 저축에 집착한다는 내용이지만 기업저축이 경기 호황이나 불황과 큰 상관없이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확대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충분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실제 데이터와 관련 문헌들을 살펴보면 경기요인 이외에 2000년대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기술 발전, 세계화, IT 투자 활성화 등 기업 경영을 둘러싼 구조 변화도 기업의 저축과잉과 매우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연하면, 먼저 기술 발전과 세계화의 급진전이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교섭력을 강화함으로써 기업이 저축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였다. 생산 및 사무 자동화의 확산으로 기업의 노동 수요가 줄어든 데 더해 세계화로 기업들이 신흥국의 값싼 노동력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자, 근로자의 교섭력이 약화되어 기업의 수익이 임금 인상을 통해 근로자 몫으로 돌아가기보다 기업 내부에 쌓이는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또한 기업 투자의 형태가 무형 IT자산 중심으로 변한 것도 기업이 저축을 확대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과거에는 투자라고 하면 대규모 생산 설비를 떠올렸지만 현대의 기업들은 소프트웨어, 데이터 서버 등 무형 IT자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IT투자재는 전통적인 생산설비와 달리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가격이 급락하기 때문에 IT자본재 중심으로의 투자구조 변화는 기업의 투자비용 부담을 줄이고 저축여력은 확충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기업의 저축 확대가 경영 환경의 구조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과잉저축 행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과잉저축이 지속되는 경우 경제의 패러다임도 과거와 비교해 많이 달라질 것이다.

먼저 돈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금리가 이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단기적으로 통화정책, 경기, 물가 등이 금리의 등락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금의 수요자이던 기업이 공급자로 바뀌어 공급 우위의 수급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측면에서는 경제적 충격의 발생으로 외국자금이 급격히 유출될 때 기업저축이 국내 자금부족의 위험을 막는 버퍼로 기능할 수 있는 동시에 막대한 저축자금이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경우에는 경제 활력이 저하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외부 충격을 유독 잘 감내하면서도 장기간의 저성장에서 좀처럼 탈출하지 못하는 일본에서 기업의 과잉저축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홍직 / 뉴욕사무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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