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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의사 부인, 화가 마누라

이수영(화가·맨해튼)
이수영(화가·맨해튼)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8/06/16 미주판 16면 기사입력 2018/06/15 16:41

중국 배우 왕조위 닮은 사과 향기 물씬 풍기는 남자 옆에 나는 다소곳이 앉아 있다. 짙은 감색 속에 묻혀 피어나는 듯한 노랑과 붉은 꽃무늬 옷을 입은 나를 그가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젊은 중국인 사업가인 그에게 친정아버지가 투자 한 계기로 집안끼리도 아는 사이다. 든든한 친정아버지에 그리고 나를 맘에 들어 하는 멋진 남자 옆에 앉아 있는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그에게 투자한 자금을 잃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자 잠에서 깨어났다. 나른한 오후에 잠이 잠깐 들었었다.

꿈일망정 아쉽다. 그 남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달콤한 꿈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으련만 방정맞게 투자 자금 잃을 걱정에 화들짝 놀라 깨어났다니! 꿈속의 그 남자처럼 나를 마냥 좋아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친정아버지 넓은 그늘에 있었을 때는 정말 좋았다. 그리고 귀엽다는 소리도 종종 듣곤 했는데…

인정하면서도 기분이 그다지 편치 않은 일이 있었다. 왜냐하면 크루즈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이 또래가 비슷한 것 같은데 인사나 하고 지내자"고 반갑게 다가왔다. 특히나 내 남편 인상이 좋다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보다 거의 열 살이나 많은 분으로 라스베이거스에서 왔단다. 내가 자기들 나이 또래로 보였단 말인가? 기후 탓일까? 뉴욕이라는 환경 탓일까? 아무래도 화가와 결혼해서 고생한 흔적이 아직도 묻어나는 탓이겠지. 오죽하면 젊어 보이는 그들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같은 또래를 대하듯 이야기했으니.

함께 온 두 커플 그리고 또 다른 세 커틀과 우리 부부 포함해서 한국 사람 모두 12명이 작은 배에 있었다. 먼저 인사를 하려 했으나 남편이 조신하게 있으라며 소매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냥 지나치기를 서너 번. 역시 먼저 다가온 뜨거운 라스베이거스에서 오신 분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사하다.

남편도 다른 때와는 달리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 "거봐. 먼저 인사하니 얼마나 좋아. 나 말리지 마. 또 다른 세 커플 한국분들이 있는데 내가 먼저 가서 인사할 테니"

그 중 한 남자분에게 "안녕하세요" 했다. "으음" 하기만 하고 별말이 없다. 무안해서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와이프 셋이 앉아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봤다. "안녕하세요" 했다. 그 중 한 분이 반가워하며 앉으란다. "남편은 어디에?" 하기에 저쪽을 가리키니 자기 남편들도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다며 내 남편을 안내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온 햇수가 우리보다 오래되었다면 나이가 더 많을 텐데 엄청 젊어 보인다. 우리처럼 날 고생한 적이 없어서일까?

어쩌다 어린 내가 그들보다 더 늙어 보인단 말인가! 배에서 내려 또 다른 세상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친정아버지 그늘에서 좋았던 기억과 결혼 초기 고생한 기억을 리와인드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하! 그러고 보니 의사 부인과 화가 마누라의 차이였다. 한 분만 빼놓고 그분들 모두 직업이 의사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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