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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어느 여름날

십여 년 전

8월의 어느 무더운 날

긴 빛의 터널 속에서 눈을 마주치며 웃었을 때

우린 검은 그림자와



불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껴안지 않았지

때가 아니기를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릴 때

섭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기력은 잃지 말자

우린 원의 주위를 계속 돌게 될 거야

우리의 길들인 우정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랑을 담은 언어도 흩어지는구나

희끗희끗한 그대의 머리카락 한올도

빛바랜 청바지도 나 잊지 않으리

아침마다 안부를 나누던 시절의

푸른 눈동자와 검은 눈동자가 함께 머물던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는 붉은 꽃잎이 아니었다

우리의 사랑은 하나다

원의 고향을 찾아 방황하는 너와 나

싸움이 가라앉은 후 비참함을 우리는 안다

어제의 노래가 내일의 흔적을 보여줄까

친구야!

빗물이 한데 모이면 사랑의 배를

띄울 수 있다는 것도 잊지는 말자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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