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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있는 창가]

유전자의 고향

심현섭, 수필가
amt6907@hotmail.com

고향이란 나서 자란 곳이다.
세상과 처음으로 대면한 곳이다.
하얀 캠퍼스 위에 그림을 그리듯이 삶의 기초 자료들이 입력되는 곳이다.
이때 체득된 가지가지 경험들이 일생을 통해서 잊혀 지지 않고 잠재적인 힘으로 그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에 누구나 식물이 빛을 향해 기울듯이 고향을 바라보고, 고향으로 향하는 원초적인 본능을 갖게 된다.
사람은 알게 모르게 나서 자란 환경의 영향을 깊게 받고, 그것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인천 월미도로 소풍을 가서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물이 한 곳에 그렇게 거대하게 모여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거기서 두려움과 경건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물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느끼고 사정없이 달려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바다는 무서우면서도 친근함을 준다.

강가에 앉아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삶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전부터 강가에 살았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도 모두 강가에서 비롯되었다.
강은 문명을 낳았고, 인간을 키웠다.
바다가 인간을 잉태시킨 자궁이라면, 강은 인간을 길러낸 젓 줄과 같다.


번젠 호수 산책길(트레일)을 걷다 보면 숲 사이로 힐끔힐끔 호숫물이 보인다.
더러는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맑고 싱그러운 파란 물이 가득 담긴 모습을 그릇째 보여준다.
이때 불현듯이 느끼는 감동은 설명이 되지 않는 가슴 깊은 곳에서 분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함께 가던 딸아이에게 물었다.


“왜 우리는 물을 보면 가슴이 탁 트이고 거기에 잠기고 싶은 것일까? 물이 주는 감동과 느낌은 아주 깊은 것인데 왜 얼핏 설명이 안 되는 것일까?”

“아빠, 그것은 우리가 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생명은 원래 바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잖아요. 어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물을 볼 때 마다 슬그머니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맞다.
그것은 일부러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고향, 어머니, 조국. 이 세 가지는 다른 뜻을 가진 같은 말이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서 항상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다.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기울어지는 경향, 치솟아 오르는 감동이다.


<이기적 유전자> 를 써서 유명한 영국의 「리처드 도킨스」는 모든 생명체는 유전자라는 프로그램(소프트웨어>으로 움직이는 기계(하드웨어)와 같다고 하였다.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도 유전자라는 생존 프로그램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 사본을 만드는 힘을 가진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 복제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것들은 절멸하지 않고 생존 기술의 명수가 됐다.
-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창조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해 주는 유일한 이유이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기계이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인 것이다.


야외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다.
가슴이 탁 트인다고 한다.
멀리 산이 아름답고, 가깝게 흘러내리는 개울물 소리가 듣기에 너무나 좋다고 한다.
애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다람쥐처럼 노닌다.


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어서 둘러 앉아 먹으면 무슨 음식이 되었건 다 맛이 있다.
삼겹살이라도 구울라치면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얀 구름이 둥실 떠서 어디론가 흘러간다.
갑자기 아! - 하는 탄성과 함께 세상사는 맛이 이래서 좋구나하고 느끼게 한다.
이태 전에 한국 홍천강가에 사는 친구를 찾아가 강 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우리는 야외에 나오면 마음이 트이고 기분이 평화로워 지는 것일까?

숲이 있고, 물이 있고, 풀밭이 있고, 끝도 없이 올려다 보이는 하늘이 있다.
그런 속에 놓이면 아늑하고 평안해 진다.
나는 순간 우리가 아득하고 아득한 세월 전에 벌거벗은 몸으로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고 남자고 여자고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인간 생존의 고향, 그것은 자연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물론이고 유전자까지도 그 고향을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본래의 고향인 자연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현생 인간의 역사는 1만년을 넘기지 못한다.
원생 인류의 시작을 약 200만년으로 볼 때 우리가 야생의 상태에서 겨우 벗어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인공의 벽과 지붕을 벗어나서 자연 상태로 들어갈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어머니의 품을 의식하게 된다.


죽어서 돌아가는 유전자의 고향을 살아서도 무의식적으로 갈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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