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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오 기자의[모던 클래식 읽기]

[밴쿠버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7/08 08:43

크래쉬(Crash)

제임스 그래험 발라드(James Graham Ballard)지음, 피카도(Picador)출판사, 2백24쪽

테크놀로지와 섹슈얼리티 관계 치밀하게 묘사
자동차로 대표되는 현대 물신주의 그려

“‘댄디’함을 상징하는 이 회사(자동차 제조 회사)가 발표한 이번 스포츠 카는 근육질의 엉덩이를 드러내며 섹시함을 보이고 있다.


10여전 한 자동차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 자동차에 대한 칼럼니스트의 글이다.
그 칼럼니스트는 스포츠 카의 뒷부분을 기술하면서 ‘근육질의 엉덩이’,’섹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절묘하게도 자동차의 뒷부분을 사람의 인체에 비유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동차에 성적인 뉘앙스까지 부여했다.


자동차와 성(性)을 결부시키는 작업은 수많은 광고. 영화, 문학 작품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현대 기술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와 인간의 본초적인 욕망인 성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제임스 그래험 발라드((James Graham Ballard)의 1973년 작 ‘크래쉬’는 바로 자동차와 섹스를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이다.
노골적인 성 묘사와 폭력성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 주제의 독특함으로 인해 장 보드리아르 등 이론가들이 작품 논쟁에 뛰어 들기도 했다.


보통 출판사들은 작품이 출간되기 앞서 사전에 선별된 독자들에게 먼저 작품을 읽게 한다.
‘크래쉬’를 읽은 한 독자는 “작가는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한다.
절대로 이 작품을 출간해서는 안 된다”며 심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었다.


한국에서는 인간 육체와 공포를 절묘하게 결합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는 캐나다 출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영화로 먼저 소개됐으며 역시 충격적인 화면으로 관심을 끌었다.


‘어제 본(Vaughan)이 마지막 자동차 충돌로 죽었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던 기간 중 그는 많은 충돌에서 자신의 죽음을 연습했으나 이번은 진짜로 유일한 사고였다.


이렇게 시작된 작품은 이후 화자 ‘제임스 발라드(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화자의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가 ‘본’을 만나는 과정, ‘본’과 동성애적 우정을 이루는 과정,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TV 상업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화자는 어느 날 런던 공항 인근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상대 차량에 타고 있던 남성을 사망케 하고 이 남성의 부인으로 의사인 헬렌 레밍턴을 다치게 한다.


병원에 입원 중이던 제임스는 어느 날 복도에서 부상된 자신의 몸을 세심하게 관찰하던 본을 만나게 되고 본과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제임스는 처음에 본을 의사로 오인했으나 본이 TV과학프로그램 진행자였으며 자동차 충돌에 편집광적인 집념을 보이고 있는 인물인 것을 알게 된다.


본은 실제로 자동차를 충돌시켜 성적인 흥분을 느끼기도 하며, 자동차 사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부서진 차량과 현장에서 사망했거나 다친 사람들의 몸을 구체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불법적으로 행해지는 자동차 충돌 시범에서 본을 다시 만난 제임스는 본이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주변의 인물들 또한 자동차 사고로 부상을 입거나 일부러 자동차를 충돌시키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몸은 사고로 인해 하나같이 왜곡돼 있다.


어느 날 본이 보여준 사고의 사진들은 상상하기 조차 두려운 모든 종류의 사고와 인간의 몸을 담고 있다.


본의 궁극적인 희망은 영화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탄 차를 자신의 차량과 충돌 시키는 것이다.
그는 런던의 고속도로를 배회하며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 작품은 불편하다.
인간 육체에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부여하려는 사람들은 이 작품을 거북하게 읽을 것이다.


‘무릎과 골반 부상, 자동차의 지붕에 의해 잘려진 팔다리, 대시보드와 유리로 긁혀진 얼굴, 연료 탱크 폭발로 입은 화상, 허술하게 장치된 안전벨트로 입은 복부 부상, 계기판으로 찢겨진 소녀의 가슴’’갈라진 여성의 넓적다리, 그리고….’

이러한 부상들은 바로 현대 산업 기술의 집합체인 바로 자동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또한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그 울타리 안에서 성적인 자극을 받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자동차는 운송 수단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 기술의 상징이며 작가는 현대인의 페티시즘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다.
이 작품은 회색의 공항, 공항 인근 고속도로, 그 고속도로 주변의 고층 아파트 등 현대 사회 물신화(物神化)를 대표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섹슈얼리티(sexuality)조차 기계 문명에 지배 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후에 “우리가 자동차 충돌에서 기술과 섹슈얼리티간의 악몽 같은 결혼 관계의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적이 있다.


이 같은 가능성을 단순하게 도착적인 행위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기술과, 이와 관련된 성적 암시가 확대되고 있음을 현 시대에서 목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편 본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탄 차를 목표로 충돌을 시도한다.
왜 하필이면 엘리자베스 테일러인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바로 현대 대중문화의 상징이다.


작가는 또한 이 작품에서 유명인사(celebrity)에 대한 현대인의 집착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이 충돌에 실패하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살아남는 것을 대중문화의 승리로 보는 것은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중문화의 손을 들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는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한국에서는 몇 분이 삭제된 채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다.
) 소설에서의 세부적인 묘사는 포르노그래피에 가깝지만 작품이 던지는 주제는 무겁기만 하다.


챕터스 매장에서 이 소설을 찾으려는 헛수고를 하지 않기 바란다.
몇 곳의 매장을 둘러 보았으나 작품을 찾을 수 없었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내거나 시애틀 인근 ‘반스 앤드 노블(Barns & Noble)’매장에서 구할 수 있다.


김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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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그래험 발라드

1930년 중국 상해에서 태어난 영국작가이다.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작품을 써왔다.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크래쉬’와 ‘태양의 제국(Empire of the Sun)’은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이라이즈(Highrise)’’콘트리드 아일랜드(Concrete Island)’등도 현대의 디스토피아를 주로 다루었으며 가장 최근작인 ‘킹덤 콤(Kingdom Comm)’도 몰(mall)을 중심으로 한 현대 소비사회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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