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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이의 ‘스물한 살 비망록

‘지식과 논쟁 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속 빈 강정이란 말이 있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비어있단 말이다.
가끔은 우리 자신이 이렇게 되고 있진 않나 돌이켜 보면 좋겠다.


지식은 분명 사람을 풍요롭게 해준다.


시야를 넓혀 주어 또다른 지식의 세계로 인도한다.
배움은 우리를 메마르지 않게 해줄 것이다.
사람들은 대학에서 이런 지식을 얻기를 원한다.


지식이란 분명 달콤하다.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마치 독이든 사과처럼 어느새 우리의 눈과 마음을 멀게 할수도 있다.
우리는 속빈 강정이 되어 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 첫 번째로 배우는 학문은 바로 ‘논쟁’ 이다.
이과든 문과든 상관이 없다.
누구나 ‘논쟁’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을 ‘레토릭(Rhetoric)’ 이라고 한다.


교수님들은 자신이 정의하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강의한다.
즉 학생들은 논쟁을 통하여 얻어진 결과물을 접하고 있다.
수업 조차 하나의 논쟁의 산물인 것이다.
학생들은 이런 단계를 거치며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들어 간다.
바로 지식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될 것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 논쟁은 합리화라는 아주 나쁜 습관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는 자신의 행동을 그럴싸한 이론을 통해 정당화 시키려 하는 것이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지성으로 이것을 덮으려고 해버린다.


‘혼전 성관계’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많은 대학생들이 부딪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제 성인 이니까” “법적으로 안될 이유가 없잖아?” “서로 좋아한다면 뭐” 이러한 이야기들이 들린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막아 버린 말이다.


세상에 지식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자라면서 배운 도덕적 가치관들이다.


그러나 얕은 지식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지식이 낳을 수 있는 독이기도 하다.
대학교에서 배운 알량한 지식들은 이러한 변명들을 번지르르하게 치장 시키기도 한다.
값진 ‘논쟁’의 기술들이 어느 새 변명하는 습관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기 합리화가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속 안은 점점 썩어 갈 수도 있다.


A와 B가 있었다.
둘은 차를 타고 간다.
A가 차안에서 담배를 폈다.
B는 담배를 피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러자 A는 내가 내 돈을 내고 피는 건데 무슨 상관이냐고 반박한다.
B는 A의 건강이 걱정된다고 말한다.
A는 충고는 고맙지만 이것은 자신의 선택이고 권리라고 주장한다.
B는 조금 격앙된 목소리로 더 이상 얘기를 못하겠다고 말한다.
A는 이러한 행동을 비꼰다.
단지 자신의 생각을 말한 것 뿐이라고 설명하면서...

물론 A의 말이 틀리지는 않다.
논쟁중 흥분한 B보다 A의 태도가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A가 현명한 사람인가? A는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헛똑똑이’일 뿐이다.
B는 그저 순수히 A를 걱정 했을 수도 있다.
A는 그것을 하나의 논쟁의 쟁점으로 바꿔버려 논쟁에서 승리해도 그 승리는 아무 값어치가 없다.


<세상 속에 부딪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교만은 지식이 낳을 수 있는 또 다른 독으로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독선적인 사람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종종 다른 이의 말을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논쟁은 어느 새 폭력적인 자기 내세움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지, 다른 사람 보다 더 잘난 사람인지, 건강하지 않은 논쟁이란 우리가 가진 지식을 저질적으로 변질 시킨다.


한 번은 어떤 어른을 뵌 적이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폭력적이라고 말했다.
신문을 보면 정치가의 얘기들은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게 포장 되었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언론은 독재보다 무서운 힘을 남용한다.


인터넷의 댓글들은 어떠한가? 비방하는 내용부터 논리를 가장한 언어 폭력들로 난무한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현상을 비판한다.
다른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우리는 공부를 제대로 해야 된다.
그저 겉만 번지르하게 지식으로 포장하면 안된다.
이러한 이들은 어느새 교만에 눈이 멀어 버릴 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지식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대학의 지식은 크나큰 이득을 가져다 줄것이다.


청년기는 참으로 흥미로운 시간이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다.
그 중간에서 수없는 변화를 맞이하며 때론 가치관이 변하기도 한다.
동시에 인덕(仁德)을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대학에 온 것만으로 안주하지 말자. 이 경험은 독이 될수도 있다.
지식이 사람을 만들지 않으며 사람이 지식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의 인성은 결코 책이 결정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끝없이 싸워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점차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늘 고민해야 된다.
조금 더 세상 속에 부딪쳐 보면 좋겠다.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며 자아를 개발 시키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않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머릿속만이 아닌 마음을 채우고 싶다.
언젠가는 지성과 덕목을 갖춘 사람이 되길 꿈꾸며, 속빈 강정이 되지 않기를 희망한다.


김은총(UBC 한인학생회 부회장, xkorea8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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