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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안아주세요

여름은 화려하다. 풍성하다. 뜨거운 태양, 쏟아지는 폭우, 검푸르게 우거진 숲, 수많은 생명이 번성하는 계절이다. 여름은 봄처럼 화사하지 않고, 가을처럼 눈부시지 않다. 겨울처럼 냉정하게 침묵하지 않는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은 기실 여름을 준비하는 길목일 뿐이고, 결실의 계절이라는 가을은 반드시 풍부한 여름을 지나야 온다. 여름은 분주하고 넉넉하며 여유가 넘친다. 하나님께서는 여름을 중심으로 세상을 운행하시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열대우림 기후인 아이티도 사계절이 있다. 작은 온도의 차이를 더듬어 이쯤이 겨울이라고 또 이쯤은 여름이라고 나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은 겨울이라서 괜찮다며 화씨 90 도를 넘나드는 2월을 보내기도 하고, 여름이라 너무 덥다며 연신 땀을 씻고 물을 마시며 화씨 100 도를 오르내리는 8월을 견디기도 한다.

그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열대기후의 여름에 갇힌 아이티 고아들은 쓸쓸하다. 학교를 가지 않는 3 개월 가까운 시간은 늘 멈춰선 듯하다. 울타리 안에서 좁고 불결한 잠자리를 견디고, 하루 두 끼 식사로 긴긴 해를 견디며 할 일 없는 뜨거운 하루를 견뎌야 한다. 그럴 때 시간은 기운이 없어 아주 더디 간다.

공부를 하는 시간이 제일 그립고, 주일예배가 그 무엇보다 간절히 기다려지는 것은 아이들이 학구열이 높고, 성령 충만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은 그저 여름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정말 가뭄에 콩 나듯 잠깐 방문하여 랄리팝 하나 입에 물려주고 사진 찍고 가는 이도 반갑고, 일 년에 한 번 혹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주는 이들도 고맙다. 구름 한 점도 반가운 것은 햇볕 내리쬐는 여름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큰 아이들로부터 노래도 배우고, 뭔가 끼리끼리 모여 놀이를 찾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쓰다버린 종이 한 장도 귀한 고아원에서 여름의 긴 시간을 보낼 여가활동은 사치다. 속살이 드러난 축구공은 돌투성이 마당 한편에 멈추어 서서 바람 한 점 없는 여름의 시간과 함께 정지해 있다. 게다가 아이들은 배가 고파 뛰고 싶지 않고, 너무 더워 달리고 싶지 않다.

나는 그래도 여름이 조금 더 따뜻하기를 기도한다. 무더위를 식혀줄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갈증을 일거에 해갈할 차가운 음료가 아니라, 땀이 나도록 따뜻한 여름을 위하여 기도한다. 아이티 고아들은 누구든 손 내밀어 안아주길 바란다. 가까이 다가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볼을 비벼주길 바란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안아주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영양실조로 아동병원에 입원한 아기들은 안아주기가 겁난다. 안아주다가 내려놓으면 힘없는 목소리로 통곡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도 땀띠가 나도록 손잡고 있고 싶고, 허그하고 싶다. 아이들은 손가락 까딱하기도 싫은 더위 속에서도 그 따뜻함을 그리워한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만져주시길 바라면서 예수님께 데리고 나올 때 제자들이 꾸짖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애들을 데려오느냐고 야단쳤다. 예수님 바쁘신데 왜 애들까지 데리고 오느냐고 난리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면서 제자들이 막아섰던 어린 아이들을 껴안으시고 손 얹어 축복하여 주셨다.

이스라엘의 뜨거운 여름 한 낮에 아이들을 꼭 껴안아주시고 가난으로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의 땀 냄새를 맡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안쓰러워하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셨다.

나는 오늘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손을 놓지 못하는 고아들을 생각한다. 손을 놓치면 돌아갈까 봐, 오래도록 함께 있고 싶어서, 잡은 손을 더 힘을 주어 꼭 쥐는 아이들의 손길을 느낀다.누군가 이번 여름에 예수님의 마음으로, 태양이 중천에 멈춘 것 같은 뜨거운 땅에서 여름을 쓸쓸하게 견디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길 기도한다.

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


조항석 / 뉴저지 뿌리깊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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