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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열 목사 목회칼럼: “가난의 역설”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1/07 15:15

몇 년 전 삼성가의 큰 형 이맹희 회장이 상속소송을 제기한 후 이건희 회장의 입장과 관련된 신문제목입니다:

"한 푼도 못 준다"는 이건희 회장 정말 끝까지 갈까 (2012.04.17 조선일보)
이건희 “한 푼도 못 줘…대법원 아니라 헌재까지라도 갈 것” (2012.04.17 한겨레)

주식보유가치만 10조 5832억원에 달하는 한국 최대 주식부호 이건희 회장이 “한 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나타낸 것입니다. 국민들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지만 가족끼리 정녕 저렇게까지 싸워야하겠느냐’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상속 재산이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진실 공방이 어떻게 결론을 맺든 간에 일반인들의 눈에 비친 삼성가의 형제들은 ‘형제애’ 보다는 ‘탐욕’에 눈이 먼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이미 누리고 나눠줄 것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기와 자기가족 챙기기에 급급한 탐욕이 인간의 모습을 얼마나 흉물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일본의 나카노 고지가 쓴 <청빈의 사상>이란 책에서 탐욕의 위험성을 이렇게 언급합니다:
“일단 소유욕에 빠지게 되면 사람은 소유의 증대에만 관심을 빼앗기고 금전의 노예가 되어,
그 밖의 인간의 중요한 일들에 마음이 미치지 못한다. 가족에의 배려라든가 사랑이라든가 자비라든가,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그 어떤 일에도 기분이 내키지 않으므로,
부자는 반드시 인색하고 욕심이 많아지게 된다. 뿐만 아니라 부자들은 소유를 늘리고,
재산의 유지에 급급해서 정신의 자유마저도 잃고 있다.”

성경은 그 탐욕을 죄를 잉태하게 만드는 원흉이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나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 (약 1:13-15)

탐욕은 무엇인가를 많이 소유하게 되면 성공이고 부요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가 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굳이 재물과 하나님을 동등한 입장에서의 주인으로 비유하면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눅 16:13)

예수님께서 성도가 가난을 선택하여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는 소유가 많고 적음과 관계 없이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살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살아야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난이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재물의 노예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신뢰할 것인가? 라는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재물은 이 세상 속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부자는 자기의 재물로 힘과 건강과 명예를 다 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부요함은 하나님의 능력 보다는 물질의 능력을 구하게 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쾌락을 취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의 명예에 열광하게 만듭니다. 재물이 주는 죄악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자만이 재물에 집착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재물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자는 재물이 유혹하는 죄악을 인식하지 못한 채 시험관 속에 담긴 개구리 같이 서서히 죄악의 제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가난함은 이 땅에서 어떠한 안전도 먹거리도 보장해 주지 못합니다. 가난함은 우리의 마음에 불안감을 심어 줍니다. 가난한 위치에 처하게 되면 거창한 꿈을 꾸기 보다 당장 위급한 생존의 문제라도 일단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됩니다. 포식이나 육체의 쾌락 혹은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도 내려놓게 되고 내일의 문제보다는 오늘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게 만듭니다. 가난한 위치에 처하게 됨으로서 자기의 무능력함을 인정하게 되고 자존심이 깨지는 상한 심령을 소유하게 됩니다. 가난함은 하나님의 공의로움과 선한 능력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가난함은 이와같이 여러 가지 악한 환경을 제공하지만 밭에 감추어진 보배와 같은 엄청난 부요함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의 마음은 이미 상처나고 깨어져서 하나님을 향하여 겸손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는 생존의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간절함을 심령이 가난한 것으로 보시면서 그들이 천국을 소유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천국보다 더 부요한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누리는 모든 영광은 천국에서 누릴 영광에 비교하면 새 발의 피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가난함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삶을 부요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난함이 하나님을 더 많이 신뢰하게 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가난함은 영적으로는 매우 부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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