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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독립만세의 함성, 100년이 지나도 우렁차게 들린다!”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1/07 15:33

오원성 특별기고

독립기념관 연구소 인명사전편찬TF팀이 최근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독립운동 인명사전’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해외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달라스에서는 문학작가로 활동하면서 달라스한인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오원성 이사장이 독립운동 뿌리 찾기에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원성 이사장은 부친 고 오정호 옹이 일제강점기에 카이지마 탄광으로 강제 동원됐던 흔적을 찾는 과정에서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독립운동 관련 기록을 남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러한 오원성 이사장에게 뜻 깊은 일이 벌어졌다. 자신의 큰 며느리인 신혜진 씨의 외증조부가 3.1만세운동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른 고 정희근 옹인 것으로 확인돼, 문재인 정부가 고 정희근 옹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고 훈장과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한 것이다.
오원성 이사장과 가족은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에게 독립운동 뿌리 찾기의 중요성을 알리고 문재인 정부의 독립운동 후손 찾기 노력에 대한 감사의 뜻을 특별기고 형식으로 본지에 전달해왔다. 이와 관련된 글을 텍사스중앙일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 고 정희근 독립운동가 = 목이 터져라 외치던 ‘독립만세!’의 함성, 10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들려온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고 정희근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뜻이 빛나고 있다. 해방 전에 돌아가셨고 주변에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못했던 아주 오래 전의 일인데, 지금이라도 명예회복을 한 것에 커다란 의의를 느끼고 있다.
본인은 물론 가족의 안위마저 뒤로한 채 풍찬노숙 했던 독립투사들의 삶은 처절했다. 고난은 당대에 그치지 않고 가난이 대물림 되어 교육받을 기회를 잃는가 하면,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국가 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기록물 중 가출옥 관계 기록물 261권을 분석하여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인명을 정리한 것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제문서해제(행형편) 480 페이지
정희근(鄭喜根) 鄭熙根. (본적) 경남 (재판소명) 부산지방법원 (죄명) 보안법위반 묘지화장장매장 및 화장취체규정위반 교사 사기 (주문) 징역 8월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어 훈장과 함께 수여된 대통령 표창장
제 219107 호/ 표창장/ 고 정희근
귀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19년 8월 15일/ 대통령 문재인
이름을 대통령표창부에 기재합니다./ 행정안전부장관 진 영

국가보훈처 공문/ 공적내용
훈격: 대통령표창(2019) 생년월일:1882.1.29. 사망일:1936.9.12.
본적: 하동 금양 대치 139
공적요약 : 1919년 3월 20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내 시장에서 정낙영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무죄를 받음.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신 할아버지지만, 100년 전 외치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다시 들려오는 듯하다. 1919년 3월 1일, 3.1만세운동이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 머나먼 이국 땅까지 이어졌다. 이런 만세운동은 독립운동가의 헌신과 가족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 선양하고 민족정기와 단결을 고취하며 조국의 평화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대업에 기여할 목적으로 1982년 1월 29일, 한국독립유공자협회가 설립되었다. 2019년 기준으로 국가보훈처가 서훈한 독립유공자는 15,511명이 해당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새롭게 발굴하여 포상이 이루어진 독립유공자는 역대 최대 규모이다. 국가는 국민의 관심과 호응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보훈정책은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추진배경을 밝혔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 동안 소외됐던 여성독립유공자에 대한 발굴도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독립운동의 현장과 역사를 보존하는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독립유공자에 대한 법률에 따라 유공자의 자녀나 배우자 1명만이 생활지원금을 받았지만, 개선한 관련 법규에 따르면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은 손자녀까지이다. 독립유공자의 발굴은 중요한 역사의 기록이기에 더 많은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큰며느리(신혜진)는 독립운동가 ‘고 정희근 애국지사’의 자손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나 또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자 오정호 옹’의 장남으로 부끄럽지 않게, 높은 책임감과 적극적인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독립유공자 발굴, 역대 최대 현 정부에 감사”[오원성]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 강제동원 피해자와 그 유족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현 정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정희근 애국지사. ‘하동독립선언서(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한 12명 중 한분으로, 우리 큰 며느리(신혜진)의 외증조할아버지시다. 3.1만세운동에 앞장서다 옥고를 치른 분이 집안 어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목이 터져라 외치던 ‘독립만세!’의 함성이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이제 우리집안은 독립운동가로 합류하게 되어서인지, 몹시 떨리고 이보다 더한 기쁨과 감동은 없는 것 같다.

‘하동독립선언서’는 현 정부 출범이후 숨어있는 독립운동가를 한명이라도 더 찾아내려는 노력 끝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2018년 4월, 경남 하동의 읍, 면사무소 문서창고에서 잠자던 것을 찾아내어 100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기에,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예우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분의 업적을 기리며 대통령께서 훈장과 함께 수여한 표창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고 정희근. 귀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건립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19년 8월 15일. 대통령 문재인. 이름을 대통령표창부에 기재합니다. 행정안전부장관 진 영.

‘국가 보훈처 공훈록’에는 좀 더 자세한 기록이 있다. ‘1919년 3월 20일 남해군 남해읍 장날에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다량 등사하는 등 시위준비를 한 후,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고창하는 등 시위를 주도했다’고.
이렇듯 정희근애국지사는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반대하고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인물로, 두 차례나 일본 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은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다 55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손녀이신 정순희여사(내게는 사부인)의 말에 의하면, 생전에 할머니께서 “네 할아버지는 의협심이 강한 분이었다. 만석꾼의 아들로 재산이 많았기에 8개월로 감형 받아 빨리 풀려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단다. 당시 3.1만세운동의 주동자임에도 후손들이 까마득히 모를 만큼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 앞에서 가족들이 알면 분명 만류했을 터였다. 또한 대부분의 옛 어른들이 그랬듯이 지극히 겸손하여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고, 독립운동을 하다 옥고를 치르더라도 스스로 자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안은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당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피해자’를 신고하라는 정책을 펼쳤기에, 역사의 쓰레기장으로 사라질 뻔했던 ‘카이지마탄광 6, 7갱 조선인광부명부’를 광운대학교 이향철교수가 발굴하면서, 그 속에 내 아버지의 ‘오정호’란 이름 석 자가 있었기에 ‘강제동원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부터 국가관이 투철했던 아버지께서는 탄광에서 하루 15시간의 막노동으로 지친 몸에도, 저녁에는 한인들을 모아 놓고 일본의 동화정책에 맞서 싸우려면 우리말과 글을 익혀야 한다며 교육에 앞장섰고, 작지만 몇몇 분들이 독립자금을 모아 부산의 모처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6.25전쟁은 독립운동가의 흔적마저도 지우게 하는 등, 불행의 씨앗을 남기고 말았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마을 이장’을 자처하고 나서서 동네 사람들의 안전한 피난을 도왔다. 그러다 한밤중 들이닥친 인민군의 총구에 가슴을 찔리고, 끌려가다 탈출한 이후로 독립운동 당시의 자료들을 아궁이에 불태웠다고 한다. 이런 사연으로 진정한 애국자임에도 버림받는 것은 아닐까 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나라를 지키려던 흔적은 어딘가에 존재하여 국가가 알아줄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다시 한 번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겨본다.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온몸으로 항거하던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그러므로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하여 최대한 예우를 하고, 후손들이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상 체계를 개편하는 일이야말로 국민통합의 첫걸음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 후손들이 자부심을 갖고 떳떳한 삶을 살아가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고 본다.

만약 대한민국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는 날이 온다면, 나의 손자 승리(8세)와 혜성(5세)이는 나라를 구하는 일에 앞장설까?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는 외고조할아버지(독립운동가 정희근옹)와 증조할아버지(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오정호옹)께서 못내 궁금해 하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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