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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다. 조사 대상이나 방법에 따라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1위를 차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윤동주의 ‘서시’가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이 시가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이라는 첫 구절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에 담긴 간절한 소망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끄러움’은 윤동주 시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정서이기도 하다. 곳곳에서 부끄러움을 노래한다. 가령 ‘쉽게 씌어진 시’의 한 구절은 어떤가?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되살피는 심경을 ‘참회록’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보며/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부끄러움’이라는 낱말 자체가 어디론가 사라져 꽁꽁 숨어버린 오늘날, 윤동주 시의 울림은 한층 우렁차다. 교회나 산사의 종소리보다 한결 큰 울림으로 황량한 벌판을 퍼져나간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흠결 없는 인간이 어디 있고, 얼룩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한 사람에 대한 평가만 해도 그렇다. 한 인간의 일생이란 공적도 보고 결점이나 과오도 보고… 그렇게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거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넓은 시각을 찾기 어렵다. 상대편의 결함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우선 물어뜯고 본다. 대통령이건 시민운동가건 육군 대장이건, 죽은 사람이건 산 사람이건 무조건 물고 본다. 우리 편이 아니면 무조건 적이다. 잘 못 물었음이 분명하게 밝혀져도 “아니면 말고!” 한 마디면 간단하게 끝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혐의만으로 희생되었다. 친일파, 빨갱이, 미투, 갑질 등등….

과일 장사는 흠 있는 사과를 상품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골라낸다. 하지만 사람을 그런 식으로 골라내 처분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얼마 전 일본에서 혐한 기사로 악명 높은 한 극우 언론이 “한국인은 야생동물 같다”라는 기사를 썼다고 매우 흥분했던 일이 있다. 말 같지도 않은 악담이다. 그런 식이라면 “일본인은 잔악무도하고 음흉한 섬짐승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도 “한국인들은 끔찍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미주한인사회가 들고 일어났으니 매우 당황스럽다. 뭐가 끔찍하다는 것인지?

그런데, 내가 보기엔 이런 악담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지금 한국의 정치판, 법조계, 언론계, 온라인 세상 등에는 들짐승 같은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부끄러움을 알고, 사람 같은 사람들은 물리지 않으려고 꽁꽁 숨어버렸다. 드디어 보수 언론이 사설 제목으로 “도저히 정상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발호하는 나라”라고 한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존경할 사람이 없는 사회는 기둥 없는 집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는 걸까?

그나마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서둘러 떠나가고, 사나운 들짐승들만 으르렁거리는 벌판 한 구석에 비겁하게 숨어서, 부끄러움에 대해서 생각하는 내 모양이 한없이 부끄럽다.

날이 갈수록 사람이 무서워지고, 세상이 싫어지고, 세월이 막막해진다. 징조가 영 심상치 않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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