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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10년 만의 ‘암바사드나’<차드 부족어·우린 괜찮아요>

‘풍부하다’는 말은 결핍이었다.

10년 전이다. 2010년 2월 아프리카의 극빈국 ‘차드(Chad)’에 갔다. 소망소사이어티(이사장 유분자),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그 땅에 우물을 파러 떠났다. 가는 곳마다, 밤낮으로 궁핍한 나라명의 뜻이 풍부였다.

넘쳐나는 건 슬픔이었다. 아이나 어른이나 목이 말라 거친 숨을 몰아쉬었고 갈증을 흙탕물로 달랬다. 며칠 동안 수수떡 하나 먹지 못한 굶주림은 일상이었다.

의미의 역설은 현지에서 보고 듣고 만진 감각들을 더 아프게 각인시켰다. 내 가난은 비만이라는 쓰라린 깨달음과 함께다.



기억 속 장면들은 지금도 따갑다. 다섯 살 여자아이 하우아의 ‘피눈물’은 차드에서 만난 첫 쓰라림이다.

우물이 없는 오지 마을로 가던 사막 위에서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하우아는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했다. 엄마는 딸에게 나무껍질과 풀을 달여 먹였다. 조상대대로 내려온 특효약이다. 하지만 더 아팠다. 메마른 땅에 고인 구정물 때문이다. 그 물을 먹고 속병이 왔고, 그 물로 얼굴을 씻어 눈병이 생겼다. 속이 아파서 울면 눈이 쓰라렸고, 눈을 비비면 피고름이 터졌다.

오지 마을 ‘까찌’의 아린 기억도 글로 옮겼었다. 고아가 된 육남매가 움막에 살았다. 아이들의 아빠는 몇 년 전 가슴이 아프다고 하더니 이내 죽었단다.

엄마는 아랍 씨족 규율에 따라 넉 달 보름간 수절했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다른 남자와 도망갔다. 버려진 아이들 양육은 열여덟 살 고모 하지아의 몫이 됐다. 조카를 키우면서 하지아도 결혼했다. 불행 속에도 행복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하지아가 임신 4개월 되던 어느 날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남편이 없어졌다. 남편은 배고프다고 우는 조카들을 미워했다고 했다. 이후 수수 나락을 줍기 위해 들판을 헤매는 삶이 시작됐다. 수수 나락 하나 건지지 못하고 아이들을 굶겨야 했을 때 그녀는 딱 한번 울었다 했다.

아이들을 버릴 만도 하건만 그러지 않았다. 어머니는 늙고 오빠는 죽었는데 누가 애들을 키우겠느냐, 이 조그만 애들을 두고 어딜 갈 수 있겠느냐 내게 되물었다. 뭐가 가장 필요한지 물었다. 역시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가진 게 없는 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따로 있었겠나. 하지아의 대답은 간절했다. “물하고 먹을 것만 있어도….”

그녀는 조카들을 떠안은 이후 그날 두 번째 울었다. 마을 친척들 앞에서도 꾹꾹 참았던 눈물을 난생 처음 보는 동양인 앞에서 꺽꺽 쏟아냈다. 그 마을 이름의 뜻도 ‘차드’처럼 모순이다. 까찌는 줄임말이다. 뒤에 ‘암바사드나’라는 단어가 더 붙는다. 뜻은 ‘우린 괜찮다(We’re OK)'다.

괜찮을 리 없는 그 땅의 아픔을 다녀와서 글로 옮겼다. 독자들은 같이 울어줬다. 눈물겨운 성금이 답지했다. 돼지저금통을 털었고, 적금을 깨고, 식비를 아껴 기부했다. 노인들은 웰페어를 봉투에 담았다. 여섯 살 난 중증장애아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낸 부모는 아프리카의 “내 아들같은 아이들”을 위해 기부했다. 애초 40개를 목표로 한 우물은 1년 만에 100개를 넘어섰다.

가슴에 박힌 10년 전 그 기억들을 다시 곱씹게 된 것은 며칠 전 받은 전화 때문이다. 유분자 이사장이다. 그 먹먹한 땅에 400호 우물이 놓였다고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아픔이 깊어 잊고 싶어한 내 얕은 이기심이 한심했다. 소망소사이어티는 10년간 묵묵히 그 아픔과 마주했다. 우물 설치 비용은 개당 3500달러다. 기부금 액수는 140만 달러를 넘는다. 정성들이 고맙기만 하다.

만약 하우아, 하지아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콸콸 쏟아지는 깨끗한 물만으로도 '암바사드나'를 외칠 거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없다'는 것의 정의는 남보다 덜 가졌다는 뜻이다. 가진 것에 감사한다면, 그 실천은 나눔이다. 그래서 풍부하다는 말은 책임이다.


정구현 선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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