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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환난장] 패가석, 집안을 망가뜨리는 돌

베이징 이화원 안의 거석
옛 집권층의 허황된 욕망

상식과 정도 크게 벗어나
나라마저 위기에 빠뜨려

중국 베이징 이화원에 있는 패가석. 집안을 망하게 하는 돌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찍기를 꺼린다고 한다. [박정호 논설위원]

중국 베이징 이화원에 있는 패가석. 집안을 망하게 하는 돌이라는 전설 같은 얘기 때문에 지금도 사람들이 이 앞에서 사진찍기를 꺼린다고 한다. [박정호 논설위원]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북서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는 이화원(?和園)은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이다. 오랜 역사와 빼어난 경관으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전체 면적이 290만㎡, 천안문 광장의 6배에 이른다. 다산연구소가 기획한 '중국인문기행 2019' 마지막 코스로 지난 25일 이곳을 찾았다. 빠듯한 일정상 구석구석 둘러볼 순 없었지만 옛 황실 정원의 아취에 잠시나마 빠져들었다.

이날 유독 눈에 띄는 돌이 하나 있었다. 청나라 말기 서태후(1835~1908)가 정무를 보던 인수전(仁壽殿) 인근의 '패가석'(敗家石)이다. 높이가 성인 남성 두세 배는 될 법하다. 너비는 높이의 세 배쯤 된다. 생김새가 영지버섯을 닮아 공식 명칭은 청지수(靑芝岫)지만 세간에는 패가석으로 알려져 있다. 울퉁불퉁 형상이 기묘하고, 크기 또한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런데 패가석은 무슨 뜻?

돌 앞의 간략한 안내문을 읽어봤다. 한국인도 많이 찾는 곳이라 우리말 설명도 붙어 있다. 사연이 재미있다. 기록에 따르면 명나라 때 미만종(米萬鐘)이라는 관료가 있었다. 재산도 넉넉했다. 그가 베이징 인근 방산(房山)에서 이 돌을 발견했는데, 색이 푸르고 표면이 윤택한 것은 물론 모양이 영지를 닮아 꽤나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베이징에 있는 자기 정원에 가져가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돌이 너무 크고 무거웠다. 곧이곧대로 믿긴 어렵지만 미만종은 이 돌을 옮기느라 가산을 탕진하고 말았다고 한다. 괴석(怪石) 하나 때문에 집안이 거덜난 것이다. 베이징 교외에 방치된 패가석을 이화원으로 다시 들여온 이는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1711~1799)다. 건륭제 또한 큰돈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돌이 방대해 정원 대문을 부숴여만 했다. 이 때부터 청나라의 기운이 약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도 이 돌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패가망신한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화원은 12세기 금나라 때 처음 세워졌다. 명나라 때 호수 주변에 여러 사원과 정자를 지었고, 1750년 건륭제 때 크게 확장됐다. 1860년 아편전쟁 때 파괴됐다가 1886년 서태후가 해군 예산을 유용하면서까지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나랏돈을 정당하게 쓰지 않은 셈이다. 물론 패가석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화원을 재건하느라 나라 곳간이 빈약해졌고, 이는 훗날 청일전쟁(1894~1895)에서 중국이 일본에 패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

패가석은 동양 전통의 수석(壽石.水石) 문화를 상징한다. 아니 그 부작용을 드러낸다. 옛 선인들은 자연의 아름다운, 기이한 돌을 완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인공이 섞이지 않은 자연을 집안에 들여 흐트러진 자신을 경계하는 거울로 삼았다. 세속의 때를 벗겨내려는 고상한 취미였다.

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들고 감상할 수 있으면 족했다. 자신의 분수, 역량을 벗어난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개인, 나아가 국가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패가석을 본 이튿날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또 다른 돌 하나를 만났다. 강세황.정선.김홍도 등 조선시대 이름난 화가들이 우리 강산의 있는 그대로 모습을 그린 실경산수화 특별전(9월 22일까지)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천하대경'(天下大景)이다. 말이 '대경'이지 이화원 패가석에 비하면 '새 발의 피' 크기다. 전시의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림의 분위기를 돋우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를 톡톡히 했다. 1960~70년대를 휩쓴 '성문영어' 시리즈의 송성문(1931~2011)씨 후손의 소장품으로 타계 직전 평생 모은 국보·보물 26점을 기증한 고인의 큰마음도 돌아보게 한다.

수석 하면 떠오르는 게 올 1000만 관객을 기록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산수경석'(山水景石)이다. 재물.행운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이 돌은 주요 등장인물들을 파멸로 이끌어간다. 평등.공정.정의가 실종된 사회에 대한 경고장인 셈이다. 감독은 특별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반칙과 특권으론 이를 절대 바로잡을 수 없다는 것. 변명과 요설은 더욱 아닐 터다.


박정호 / 한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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