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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계단의 사유

이야기는 힘이 있다. 잘 구성된 이야기는 때론, 잘 정돈된 논리적 논문보다 몇 배의 흡인력으로 사람을 압도적으로 제압한다. 맹목적인 사랑이나 폭력은 위험한 것이라고 훈계하는 것보다, 비뚤어진 사랑이나 폭력으로 비극적인 결론을 맞게 된 주인공의 처절한 영화 한 편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더 강렬하다.

요즘, 떠들썩한 화제의 영화 ‘기생충’과 ‘조커’를 보았다. 그 여운이 주는 강력한 펀치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생충, 조커, 함축된 의미의 제목으로부터 나는 이미 제압되었다. 치밀한 분석에서 선택된 의상 컬러로 시작하여 쓰레기·폭우·빛과 어둠·계단·지하·숨 가쁜 음악, 열거할 수 없는 은유와 메타포가 수많은 장치가 되어 줄거리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인간 심리의 선과 악의 내면의 경계가 보는 이를 전율하게 되는 천재성, 영감과 예술적 미장센에 전율했다. 현실을 투영한 픽션, 두 영화를 관람하며 극대화된 자본주의 현실 속에 순수한 인간이 악당으로 되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연민을 느꼈다. 선과 악의 경계에 시원한 결말이 없는 영화 속에, 불완전한 시대의 삶의 지표에 대해 고민하며 우리 자신을 투영해 보는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도 빈부의 차이의 양극화 갈등을 표현한 두 영화는 다르지만, 그 속에 계단의 내포된 숨은 의미는 서로 같은 듯하다.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과 저녁밥 먹으라고 소리치며 달려온 엄마한테 혼쭐나며 집에 들어가기까지 가위바위보를 하던 계단 놀이가 뜬금없이 생각난다. 가위를 낸 아이는 의기양양 한 계단 껑충 올라가고, 보를 낸 아이의 손이 힘없이 쳐지고, 어쩌다 연속 뒤지게 되면 높은 계단으로 올라간 아이를 아래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계단 놀이가 시들해지면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모습도 떠오른다. 나는 순간, 오싹해진다. 계단! 상승과 하락, 높음과 낮음, 세상의 무서운 지배의 논리가 내포된 듯하다. 땅따먹기란 어감도 새삼 섬뜩하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마냥 즐거웠던 놀이에 숨겨진 인간의 승자 패자의 복선이 있었단 말인가. 무구히 순진한 어린아이들의 놀이에 인간 약육강식의 논리를 애써 부인하고 싶다. 억지로라도 계단을 다른 사유로 몰고 가는 나의 내면을 따라가 본다.



고대와 웅장한 로마 시대의 아름다운 집은 거의 단층이었고 그 시대의 계단은 오로지 신전으로 가는 제단의 통로와 기구가 아니었는가. 피라미드, 불교의 사리탑, 성당, 교회 앞의 계단. 어김없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만 인간은 신의 문전에 도달하는, 계단은 천국 문의 또 다른 메타포가 아닐까? 그렇다면 계단은 높고 낮은 승자의 논리가 아닌, 순수한 어린아이 마음이 되어 지순하고 겸손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위를 향해 정진하는 순례길의 다른 상징성이 아닐까. 영화로 시작하여 깊어질 데로 깊어진 나의 사유. 이렇듯, 예술이 주는 엑스터시는 황홀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사순절을 앞두고 재단에 엎드린 사재의 지극한 순종과 겸허함으로 낮아져 지상의 계단에서 천상의 계단을 향해 두 손을 모아본다.


곽애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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