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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와 데카메론식 각성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계속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의 무풍지대로 여겨지던 미국에도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면서 학교들 휴교하고 집단시설의 휴관 사태가 잇따르는 가운데 문을 닫는 교회들이 늘고 있다. 드디어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내가 다니는 노인센터도 언제 문 닫을지 모른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사재기를 시작했고 이 바람에 일부 생필품이 동나고 있다고 한다. 먼 나라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코로나19는 황사나 미세먼지처럼 지수로 예측되지 않기에 더 무섭다. 그것은 언제든 어디서든 스멀스멀 다가와 사람을 숙주로 삼고 스스로 복제해 증식한다. 그리고 곧 소문처럼 퍼질 기세여서 모두를 가슴 졸이게 한다. 면역력이 약할수록 더 많이 희생된다는 보도는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에겐 끔찍한 뉴스다. 바야흐로 중세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흑사병의 공포가 재연되는 것 같다. 이 일을 몸소 겪은 조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흑사병이 휩쓸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그렸다.

이 책은 전염병 이야기로 시작한다. 보카치오는 시민의 4분의 3의 목숩을 앗아간 끔찍한 사태를 겪고서 이야기책을 썼다. 일곱 명의 여인과 세 명의 남자가 도시 근교로 피신해 한 사람이 하루 한 가지씩 열흘 동안 100개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데카메론’은 ‘열흘간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다 죽을 때도 거짓말을 해 성인(聖人)이 된 사람, 남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권력자에게 지혜롭게 대처한 여인 같은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담았다. 각 부분들은 가끔은 순수하기도, 때로는 음탕하기도 한 이야기들로 중세의 시대상과 보카치오가 바라보는 세상의 다양함을 잘 보여준다. 단테의 ‘신곡’에 비견하여 ‘인곡’ 이라고 부를 정도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카메론’은 중세의 모든 예술의 뱃머리가 맹목적으로 신에게 향하고 있던 뱃머리를 최초로 인간에게 돌리게 한 작품이다.

1348년 3월과 7월 사이에 피렌체에서만도 10만 명 넘게 숨졌다. 이 재앙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혼자라도 살아야겠다는 절박하고 야박한 마음을 품고 세 가지 길을 선택하더란다. 안전한 곳에서 사치와 향락을 절제하며 타인과 격리된 사람들,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향락을 즐기며 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곧 다들 죽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목숨과 재산을 돌보지 않고 모든 소유를 예사로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저마다 대재앙을 맞은 반응은 개인 간 분리의식, 향락 추구, 공공개념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흑사병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면에서 인간은 신에게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생존방식을 결정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대재앙을 통해 이런 자의식을 가진 ‘개인’들이 출현했으며, 르네상스가 앞당겨졌고, 비로소 계급·지위·성별에 관계없이 개인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근대가 열리기 시작했다.이번 코로나19의 확산이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유럽의 참상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바이러스는 우리 주변을 배회하고 그래서 두려움은 나날이 증폭된다. 이 와중에 서로 불신하는 개인,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위정자들, 마스크 품귀 사태를 이용해 한몫 잡아보려는 투기꾼들이 곳곳에서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보카치오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인정’이라고 했다. 인정은 국가에 대한 신적인 믿음으로 구원을 의탁하고 기대하는 대중보다 스스로 각성하고 결정하려고 노력하는 개인에 의해 실천되고 또 끼리끼리 베풀어지는 공동체 의식일 것이다.

과연 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오염된 병든 도시와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게 될까. 보카치오의 논리를 빌리자면 바로 우리 개인들, 그리고 아픈 이웃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사랑을 베푼 사람들일 것이다. 진정한 영웅 또한 헷갈릴 일이 아니다. 지금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방호복을 입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코로나 전사들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미국은 이제 코로나 바이러스 광풍의 초입에 들어섰다. 앞으로 당분간 우리의 일상은 불편해질 것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도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다시 이 책을 펴들고 잠시 시름을 이겨볼까 한다.


김건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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