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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 바람이 겨울 나무에게

봄 바람은 겨울 나무에게 속삭였다
"파란 새 순은 언제 피울 거야?"
겨울나무는 흔들릴 뿐 대답이 없다
봄 바람은 좀 더 세게 겨울나무를 흔들었다
"예쁜 꽃망울은 언제 보여줄 꺼야?"
겨울 나무 가지들은 더 좌우로 흔들릴 뿐 침묵하였다


봄 바람의 간청과 두드림에 겨울나무는 묵묵부답이었다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하늘에선 더 이상 눈은 내리지 않고
가랑비가 안개처럼 내리는 날
봄 바람은 언덕 구릉을 스쳐 지나가다
나무가지 끝 조그만 움이 트는 걸 보았다

겨울 나무는 봄 바람보다 더 길고 아픈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봄 바람이 볼 수 없는 깊은 뿌리로부터 생명을 퍼 올리며
푸른 나뭇잎의 꿈은 딱딱해진 가지로 전하는 고통이다
침묵이 아니라 입술을 깨무는 아픔이다
오랜 겨울나무 침묵은 봄 바람의 얼굴을 돌려놓았지만
그건 어느 봄날 싹 트일 푸른 꿈이고
예쁘게 피어날 꽃망울을 위한 사랑의 침묵 이다

침묵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믿음은 깨달음이 아니라 만나는 것이다
삶의 진자리 마른자리에서 내 것이 되는 것이다
더 이상 더디 오는 푸른 잎사귀를 초조히 기다리지 말자
봄 바람의 소원과 겨울 나무의 때가 달랐을 뿐
하늘을 향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릴 봄날의 기적엔 변함이 없다
서두르거나 낙심하는 날들은 꿈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서로의 디딤돌이 되자
정보와 지식만으로 이룰 수 없는, 믿음은 그런 것이다
가까이 가서 말하고 부딪치고 한 발자국을 같이 걷는 것이다
삶의 문제가 어려워지면 믿음으로 나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어려움에 빠져버리면 헤어날 수 없는 난공불락이 된다

언덕 위에도, 바위 옆 구릉지에도, 나의 뜰에도
푸른 싹과 색색의 꽃망울이 터져 나와 봄날을 기뻐할 것이다
고요함에 길들여진 겨울나무 가지마다 푸른 잎이 피고
사뭇 다른 노래와 다른 별빛이 내려와 정원에 가득 하고
살아가야 하는 하루가 아니라 살아가는 하루가 펼쳐지고
욕심 부릴 수 없는 내일을 위해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봄 바람과 겨울나무는 서로의 믿음이 되어
꽃망울이 흐드러진 멋진 봄 날에 손바닥을 칠 것이다

봄 바람은 겨울 나무에게 속삭였다
"지금 꿈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
겨울 나무는 눈을 지긋이 감으며 대답했다
"푸른 잎과 꽃송이가 함께 흔들리고 있어!"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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