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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뉴스] 젊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호르헤 보르헤스의 단편모음집 '픽션들' 중 '비밀의 기적'.

# 1939년 독일군이 진주한 체코슬로바키아. 유대인 작가 홀라딕은 독일군에게 끌려가 총살형을 기다린다. 그에겐 아직 끝마치지 못한 희곡 '적들'에 대한 미련이 있다. 그는 신에게 갈구한다. "기적을 베푸소. 1년만. 마지막 역작을 완성할 수 있게 해주소." 홀라딕은 총구 앞에 선다. 매몰찬 침묵. 9시 정각.

이맘때면 세월의 흐름이 가슴에 닿는다. 시간은 과연 '흐르는 것'인가. 모두가 쉽게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물리학의 매우 복잡한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우리들이 시간을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일차적으로 달력과 숫자 때문이다. 십진법이 몸에 밴 우리로서는 ① 다음에 ②, 그 다음에 ③, ④, ⑤처럼 생각한다. 이런 연속적인 인식체계는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인간의 인식으로는 다른 날이 전혀 아니다. 차라리 음력이나 이슬람력(10월3일)의 새해 첫날은 계절의 변화와 관련이 있어 '뭔가 바뀌었다'라는 느낌을 준다.



"이 하얀 머리(백발)를 갖기 위해 얼마나 기다렸던 줄 아는가." 늙어감은 처량함인가, 기다렸던 영광인가.

백발의 영광이든 힘없는 퇴락이든 인간의 끝무렵은 '노인'이다. 많은 이들은 노인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그래서 신문에서조차 노인을 '시니어'라는 묘한 단어로 지칭한다. PC(politically correct)의 세계는, 젊은이가 나이 든 사람을 업은 모양의 '老'자를 없앴다.

"To remember is to live."(기억한다는 것이 산다는 것)

수퍼 노인(superager)이란 말이 있다. 70~80대 노인이면서도 젊은이에 맞먹는 기억력과 집중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 노스이스턴대학의 리사 펠드먼 바렛 심리학 교수의 기고문이 실렸다. 수퍼노인 17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해 일반 노인의 뇌와 비교한 결과, 일반 노인은 뇌의 위축 현상이 나타났으나 수퍼노인들의 뇌는 젊은이들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복잡한 의학적 설명을 압축하면, 수퍼노인들의 대뇌 피질이 매우 두껍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이 자신의 대뇌 피질 두께를 재보는 일은 없다. 바렛 교수도 그걸 알았는지 수퍼노인이 '되는 방법'에 방점을 찍는다. Superager가 되고 싶다면 외국어를 배우든 온라인 대학 강의를 듣든, 극심한 육체 활동이든 뇌를 몹시 피곤하게 하라고 한다. 스도쿠나 퍼즐 정도론 부족하고 "웩(yuck)" 할 정도로 그 강도가 세야 한다고 한다.

뇌가 활동을 많이 하면 피곤, 좌절 등의 나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노년에 접어들면 유쾌하지 않은 일들을 회피하는 것으로 행복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딜레마는 여기다. 뇌가 불유쾌해야 젊어지는 데,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고통은 나약이 몸을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바렛 교수는 "수퍼노인은 해병대와 같다"고 한다. 격렬하게 뇌를 움직일 때 심신의 피곤함과 불편감이 생기지만, 더 날카로운 기억력과 더 큰 집중력이라는 정신적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삶의 각 단계는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다. 눈에 보이는 시간은 달력(숫자)에만 있다. 우리는 시간을 수축하거나, 확장하거나, 재촉하거나, 더디게 할 수 있다.

#. 마침내 발사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홀라딕은 물질적 세계가 정지해 버린 기적을 느낀다.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고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이다.홀라딕은 1년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자신의 유작을 다듬고 또 다듬는다. 마지막 구절을 완성한 순간, 총성은 그를 존재에서 지워버린다. 9시 2분.


김석하 사회부장 kim.sukh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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