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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토를 처음 사봤다…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날이었다.

"당첨이 되면 어떡하지? 회사를 그만둬야 하나? 뭐하지? 엄마한테는 뭐라고 하지? 며칠 전 지나가다가 본 행콕팍에 집 하나 살까? 운전은 못하지만 차도 사야겠지?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는 뭐라고 할까? 내 이름 들어간 도서관 하나 지을까?"

기분 좋은 물음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23살, '평생 동안' 사본 적 없는 로토를 미국에서 사게 될 줄이야. 마음이 종일 울렁거렸다. 잭팟 7억5870만 달러를 한국 돈으로 환산해도 감이 안 왔다. 5달러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가장 좋아하는 나다.



신문사 편집국 막내인 나는 24일 아침, "막내가 파워볼 할 사람 돈 2불씩 거둬라. 이름 적고"라는 명령(?)을 받았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데.

선배들 자리를 돌며 2불씩 받고 명단을 적었다. 모두 24명, 48달러가 모였다.

점심 시간, 두 선배하고 같이 작은 구멍가게를 들렀다. 숫자 150여 개가 티켓 3장에 찍혀 나왔다. 티켓을 스캔해 선배들에게 돌리는데, "티켓 보관 잘해라" "당첨됐다고 도망가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농담 섞인 진심이 곳곳에서 들렸다. 여럿이서 티켓을 구매해도, 당첨 확률은 몇천만 분의 1에 불과하다. 그 미미한 확률의 상승 덕분에 선배들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공상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다 때려 치우고 말리부에 집 한 채 사서 음악 듣고 책만 읽으며 살기, 다저구장이나 LA필하모니 첫 번째 줄 평생 이용권, 아들에게 좋은 작업실 마련해주기, 가끔 길에 나와 돈 뿌리기, 봉사단체 큰 돈 팍팍 밀어주기, 일은 계속하는 데 대신 일 해줄 사람 고용해 옆에 앉히기…, 마음 깊숙이 숨겨 뒀던 유치한 꿈들이 자유로이 날개를 펼치는 순간이다.

오후 5시쯤, 한 선배가 '파워볼 티켓을 더 사야겠다'며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도 '나 혼자만의' 파워볼 티켓 한 장을 더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퇴근 후 급하게 회사 근처 세븐 일레븐을 찾았다. 어떤 사람은 40달러 어치 파워볼 티켓을 주문했고, 한 흑인 남성은 자기 번호가 당첨 번호라도 되는 듯 손으로 가리고 복권 용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편의점 종업원이 '퀵픽'을 원하냐고 하기에 그게 뭐냐고 묻자, 한국말로 하면 '자동 추첨' 같은 거라고 한다. 생에 첫 번째 복권이니 특별한 숫자들로 채우고 싶어, 퀵픽 대신 가족의 생일을 이리저리 갖다 붙여 숫자 6개를 만들었다.

막상 티켓을 받고 보니 1~69까지 숫자 중 5개, 26개 번호 중 1개 맞추는 게 뭐 그리 어려울까 싶기도 했다. 당첨 확률은 2억9220만 분의 1.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티켓을 사는 순간, 당첨 이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1등 당첨자 중 많은 사람이 엉망으로 살다가 죽는다고 하던데…"라는 선배의 귓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지갑에 티켓을 넣고 편의점을 나오면서 "그래도 나는 다를 거야. 좋은 데 기부도 하고…멋지게 살 거야"라고 다짐했다.

집에 들어오니 오후 6시45분. 드디어 세상이 바뀐다. 신났다. 발표 시간까지 1시간 반 동안 너무 행복했다.

수많은 인종과 남녀노소가 사는 미국은 다양성의 극치다. 뭐하나 통일적인 게 없다. 그게 멋있고 좋았다.

그런데…,

로토 앞에서만큼은 모두 똑같은 마음, 희망이었다. 대동단결. "크크"

드디어 발표 시간이 됐다. 선배들이 알려 준 웹사이트에 떨리는 마음으로 접속했다. "짜잔"

우선 메가번호라는 것을 맞춰 봤다. 4번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150개 번호를 봤다.

"어라, 없네. 이 많은 숫자 중에 4번이 없어?" 놀랍고 신기했다. 그리고 다른 번호들을 맞춰봤다.

발표된 잭팟 번호를 보니 내가 갖고 있는 파워볼의 그 많은 번호 중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어떻게 이토록 교묘히 비켜 가는지 그게 더 놀랍다. 손에 넣은 사탕을 뺏긴 듯 조금 억울하고 허탈하다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 스스로가 우스워졌다.

"아하, 바로 이 맛이구나, 로토가." 갑자기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가 떠올랐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로토 당첨을 기다림은 잭팟이 안 되도 좋다!" 나름 멋진 '로토 시(詩)'가 떠올랐다. 또 웃음이 나왔다.

집 떠나온 지 7개월 만에 가장 짜릿하고 행복했다.

아무래도 또 할 거 같다.


김지윤 인턴기자 kim.jiyoon2@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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